“2028년은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 양성 교육기관인 조선여자의학강습소가 설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매우 뜻깊은 해입니다. 연구개발(R&D)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새롭게 문을 열 미래 병원 준비에 매진한다면 100주년까지 ‘패스트 팔로’가 아닌 ‘퍼스트 무버’로 도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올해 3월 임기를 시작해 두 달을 채워가는 윤을식(60·사진)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중차대한 시기에 의료원을 이끌게 된 데다 처음으로 2년제가 아닌 4년제 부총장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면서도 “100주년까지 국내 1위, 세계 30위권의 초격차 연구 중심 의료기관으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는 고려대의료원의 브랜드 가치를 단기간 내 끌어올리기 위해 윤 원장이 꺼내든 카드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그는 “그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미덕이라 여기면서 외부 평가에는 신경을 덜 쓰는 경향이 있었다”며 “전형적인 고려대 스타일인데 안암병원장을 맡을 때부터 고려대의료원의 역량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컸다”고 운을 뗐다.
본교 의학과 83학번인 윤 원장은 입학 후 40년 동안 고려대의 테두리를 벗어난 적이 없는 ‘고대맨’이다. 의과대학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박사를 마쳤고 고려대구로병원 임상강사(펠로)를 거쳐 고려대안산병원 교육수련위원장, 고려대의료원 의무기획 부처장, 고려대안암병원 진료부원장, 제30대 고려대안암병원장 등을 역임했다. 로봇유방재건성형술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발전시킨 유방 재건 분야 명의답게 대한성형외과학회 이사장, 대한유방성형학회 회장, 제9대 대한사립대학병원협회 회장 등을 맡으며 대외적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보건의료계에서 고려대의료원이 지닌 브랜드 가치를 누구보다 잘 간파할 수 있었던 건 그런 배경 때문이다.
윤 원장은 “소위 ‘빅5’라는 명칭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국내는 병상 수 기준으로 병원 순위를 매기는 경향이 있다”며 “고려대의료원은 산하 병원 중 가장 규모가 큰 안암병원조차 1066병상으로 전국에서 열다섯 번째인 만큼 무리하게 몸집을 키우기보다는 상급종합병원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면서 국내외 경쟁력을 드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R&D로 승부수를 띄우자는 것이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연구중심병원 2곳을 산하기관으로 보유한 고려대의료원의 R&D 수주는 연평균 13%에 달한다. 연구를 통한 기술이전료는 한 해 300억 원대, 전체 연구 수주 규모는 수천억 원대에 이른다.
최근에는 안암·구로·안산 3개 병원에 이어 백신 주권 확보를 위한 정릉 메디사이언스파크와 미래 의학 테스트베드인 청담 고영캠퍼스를 조성하며 총 5개 캠퍼스 체제를 갖췄다. 그는 “대학병원들이 기존처럼 환자 진료에만 몰입해서는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수 없다”며 “산학연 아이디어를 공유해 기술산업화에 도전하면 신약·의료기기 개발로 이어져 질병에 대한 환자군 전체가 혜택을 누릴 뿐 아니라 고용 창출, 유관 산업 전반이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가 조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향후 4년간 1200억 원을 연구 장비와 인센티브에 투자하고 연구 업적 평가 기준을 강화할 생각이다. 고려대의료원에 재직 중인 전공의나 임상강사가 고려대 일반대학원 의학과에 진학하면 입학금의 50%, 등록금의 80%를 지원하는 제도를 신설한 것도 R&D 강화를 위한 인재 양성 제도와 궤를 같이한다. 2028년 ‘세상에 없던 미래 병원’을 구현하기 위해 경기도 과천과 남양주 2곳에 제4병원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미래 병원에 적용해 첨단 의학 테스트베드 역할을 수행하고 최신 융복합 연구, 의료기술 산업화 주도를 통한 고부가가치를 창조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국가의 핵심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바이오메디컬 산업 성장에도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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