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첨단 반도체, 반도체 생산 장비 및 소프트웨어에 대한 대중국 수출통제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공식 발표에 앞서 정보를 입수한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이 보도하자 국내에서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서의 전기차 보조금 차별과 같은 문제가 또다시 재연될 것인가에 관한 우려가 컸다. 반도체 생산에는 기존 장비를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추가 장비를 조달하지 못한다면 기존의 생산 라인은 멈춰설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의 수출통제 조치가 우리 산업계에 미칠 영향은 전반적으로 제한적일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 측이 수출통제 공식 발표 전에 우리 당국에 관련 정보를 제공했고 지난 1개월 동안 수출통제 당국, 외교 채널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미국 측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삼성과 SK가 중국에 설치한 생산 설비 가동에 차질이 없게 필요한 장비 조달에는 지장이 없도록 사전에 양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중국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개 업체만이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중국에서 가동하고 있는 삼성과 SK에 필요한 장비 조달을 미국이 허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중국에서 생산된 반도체가 중국 내수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로 수출되고 있어 가동 중지는 또 다른 반도체 대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수출통제 조치에서는 미국 기업이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기억소자(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메모리, 특정 고사양 기술을 사용한 로직칩 등을 초과한 첨단 반도체 및 이들 제품 생산에 필요한 장비·기술·소프트웨어를 중국에 수출·이전·재이전할 경우 상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어떤 ‘미국 사람’도 본인이 알았든 몰랐든 간에 허가없이 미 상무부가 통제하는 수준 이상의 첨단 반도체 기술을 중국이 개발 혹은 생산하는 데 관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번 수출통제 강화 목적은 중국의 국가주도 반도체 굴기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제조 2025’ ‘5개년 발전계획’ 등에서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올리기로 했다. 천문학적 규모의 정부 지원금과 ‘천인계획’ 등으로 중국 반도체 굴기 정책은 실적을 내는 듯했다. 2020년 블룸버그통신 집계에 따르면 당시 1년 동안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세계 20개 반도체 기업 중 19개가 중국 업체였다.
최근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급성장했지만 내실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중국 반도체 관련 기업의 매출이 크게 늘었지만 대부분 외국계 기업의 실적이고 자급률은 목표치에 한참 미달하는 20%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수조 원을 투입한 반도체 프로젝트 다수가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배경에는 글로벌 공급망 참여 없이는 개발과 생산이 사실상 불가능한 첨단 반도체 산업의 특성에다가 첨단산업에 대한 미국의 중국 배제와 수출통제가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은 국가 안보 명분을 들어 물품과 기술에 대한 수출규제에 나섰다. 기존의 수출통제 제도에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도입한 조치로 미국은 우려국가에 수출통제를 취해왔다. 지난해 말 SK는 중국 우시 D램 공장에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노광장비(EUV)를 도입하려 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올해 9월 2일 미 상무부는 엔비디아(NDVIA)와 AMD 등 자국 반도체 기업에 일부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중국에 수출하지 않도록 통보했다.
국내 업체는 현재의 중국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겠지만 세계 최대 반도체 수요 국가인 중국에 고사양 첨단 반도체를 수출할 수 없게 됐고 미 상무부의 수출허가를 받아야 하는 행정적인 부담을 안게 됐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은 지연될 것이고 중국의 기술 추격을 조금 늦출 수 있게 됐다. 장기적으로 중국이 독자적인 첨단 반도체를 양산하기까지 삼성과 SK의 반도체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인만큼 우리 업체에 대한 중국의 대우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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