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무역 이론은 비교 우위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각 국가가 자국의 강점을 기반 삼아 상대적으로 더 효율적인 생산을 전문으로 한다면 모든 국가가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 200여 년간의 경험적 증거들이 이를 지지하고 무역 확대로 대변되는 세계화가 글로벌 경제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방향성 같은 세계화에도 몇 차례 물결이 있었다. 현재 우리는 중요한 물결의 한 굴곡인 탈세계화가 여러 경로에서 진행되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올해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의 주요 화두였던 탈세계화의 증거들을 살펴보고 투자 방향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8월 중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최종 서명으로 발효되자 미국 내 전기차 생산 설비를 완료하지 못한 국내 완성차 기업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시작된 미중 무역 분쟁, 아메리카 퍼스트, 온쇼어링의 결실이 마치 민주당의 바이든 정부에서 완성돼가는 모습이다. 또한 5월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블록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가 발효돼 중국 중심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일본 주도의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같은 다른 경제블록을 견제하는 등 시장 분열의 증거는 다양한 경로에서 발견되고 있다.
세계화만을 경험한 우리에게는 놀랍게도 이러한 흐름이 역사적으로 처음은 아니다. 세계화를 대변하는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 비중을 보면 1800년대부터 제국주의에 기반한 1차 세계화가 고도로 진행됐고 이후 1차 세계대전과 함께 무역 비중이 극적으로 축소되는 탈세계화가 2차 대전 종전까지 꽤 오랜 기간 이뤄졌다. 이후 동아시아 무역 대국 등장, 2007년 브릭스(BRICS)의 등장 등 초세계화가 진행됐고 2010년 이후 세계는 무역 성장이 정체되면서 탈세계화에 다시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무역 총계 1조 달러를 돌파한 경험을 했지만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상품에서 대규모 수출 증가를 기록했던 2021년을 제외하면 탈세계화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무역 규모가 정체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2011년 이후 주식시장이 10여 년간 멈춰 있는 국면과 일치한다. 탈세계화 시대, 무역 위축이라는 전방위적인 도전에 직면한 소규모 개방경제의 우리나라에서 투자의 기회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구조적인 특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1차 세계화가 종료된 1915년과 무역 비중이 후퇴한 1980년대 초는 1차 세계대전과 극도로 긴장된 냉전 시기라는 점에서 2010년대 이후부터 올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까지 현재 지정학적 긴장과 궤를 같이한다. 둘째, 디지털화와 글로벌 플랫폼의 등장은 인력을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은 서비스산업에서 광범위한 재택근무, 비대면 업무 처리로 교역·이동의 필요성을 감소시켰다. 셋째, 중국을 비롯한 저임금 국가의 임금 상승과 결합된 로봇 기술의 성장은 이동 비용의 감소를 압도하는 생산 비용 절감을 이루며 저임금 국가의 상대적 생산성을 반감시키고 있다. 수많은 온쇼어링에서의 제조 공정은 로보틱스, 자동화 공정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저임금 생산 기지 대비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넷째, IRA에서 드러난 바 세계화 시대(GATT·WTO 체제하)에서는 불공정 무역 거래로 인식될 수 있는 조치들이 기후위기 해결이라는 전 세계적 대의 앞에 정당성을 부여받고 있다. 끝으로 광물·에너지 자원은 지정학적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영역이며 탈세계화에서도 온쇼어링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