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골치 아픈 인생이라지만, 추리고 걸러내 바라보면 엇비슷한 것들의 반복이다. 먹고, 자고, 웃고, 울고…. 반복된 일상을 ‘뻔한 것’으로 방치하지 말고 각각의 현재가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보자. 여기 작가 듀오 진달래&박우혁의 신작 ‘의미있는 형식들’이 그렇게 청한다.
널찍한 무대 위로 퍼포머(공연자)가 걸어 나온다.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큰 숨을 들이쉬고 내쉬길 거듭한다. 팔다리를 들었다 내리는 평범한 동작이지만 전문 공연자의 행위는 무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따금 들리는 박수 소리는 움직임이 4박자 단위로 이뤄짐을 일깨운다. 5분 남짓한 공연 후, 두 번째 무대가 신속하게 마련된다. 크게 다를 바 없다. 새로운 퍼포머는 다른 방향에서 들어왔을 뿐, 몸짓은 앞의 공연자와 비슷하다. “세계는 복잡하게 보이지만 여러 형식으로 조합된 단순한 ‘현재’들이 반복되고 있을 뿐인지라, 거의 동일한 퍼포먼스로 보일 수 있다”고 진달래 작가가 설명한다.
약 1시간 30분짜리 공연은 총 8개의 무대로 이뤄진다. ‘큰 틀에서 비슷한 동작’을 기본으로 하되, 쌍둥이처럼 이것을 복제하는 무대가 있는가 하면 돌림노래 같은 형식으로 뒤이어 따라가는 방식도 있다. 기계 같은 동작들과 달리 일곱 번째 무대는 격정적 감정을 담은 움직임이 펼쳐진다. 배경음악도 박자만 맞추던 박수소리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피아노·전자악기 등이 다양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 작품은 오는 12일과 13일 양일간 강남구 언주로의 플랫폼엘 컨템포러리아트센터(이하 플랫폼엘)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진달래, 같은 대학 시각디자인과 출신의 박우혁으로 이뤄진 ‘진달래&박우혁’은 글자로 이미지와 메시지를 그려내는 타이포그래피 작가팀이다. 지난 2019년 국제타이포그래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의뢰받아 작업하는 디자인 일은 포스터·책 등 평면작업이 주를 이루지만, 이들의 ‘예술’은 이처럼 설치미술과 공연이 결합한 종합예술의 형태를 가진다. 규칙성 있는 활자를 다루고, 점·선·면 등의 기본형태로 작업하는 이들답게 사회와 삶을 이루는 ‘기본 구조’를 도출해 자신만의 예술을 구사한다. 이번 작품에 대해서는 “삶의 여러 장면들을 최소의 움직임과 규칙으로 나누어 재구성해 여러 단편들로 재탄생시켰다”면서 이를 “구조화 한 여러 현재”라고 표현했다. 난해할 수 있고, 일시적이었다가 사라질 수 있는 작업은 ‘플랫폼엘’이라는 그릇이 있기에 제대로 담길 수 있었다.
패션 브랜드 ‘루이 까또즈’로 유명한 ㈜태진인터내셔날은 2014년 태진문화재단을 설립한 후, 2016년 플랫폼엘을 개관했다. 일반적인 ‘미술관’이 아니다. 현대미술 전시는 물론, 퍼포먼스·사운드아트·영화 스크리닝 등 통섭형 예술의 다양한 형식을 선보이는 곳이다. 패션산업과 순수예술이 끊임없는 ‘혁신’과 새로운 ‘도전’을 공통분모로 갖는다는 점을 주목했다. 플랫폼엘의 대표적인 행사가 2017년부터 시작한 ‘플랫폼엘 라이브 아츠 프로그램(PLAP)’이다. 그림과 조각처럼 고정된 형태로 오래 남는 미술작품이 아닌, 탈장르적이고 새로운 성격의 예술을 발굴, 후원하기 위해 기획됐다. 공연 형식의 행위예술(퍼포먼스 아트)과 사운드아트, 개념미술과 설치작업 등이 그 대상이다. 한시적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비물질적 예술’이기 때문에 지원이 절실한 분야이기도 하다. 올해 행사는 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선발된 7팀은 9월 4일까지 공연을 이어간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