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2019년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실시한 반도체 소재 국산화가 제자리걸음 중이라고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달 퇴임사에서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로 인한 위기를 온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극복해냈다"고 자평했지만 일본 언론은 정반대의 평가를 내린 것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8일 일본이 수출 규제를 적용한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무역협회의 통계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통계에 따르면 불화수소의 대(對)일본 수입액은 규제 발표 시점인 2019년 7월부터 급감했고 2020년엔 2018년보다 86%나 줄었다.
하지만 이 추세는 지난해부터 반전됐다. 지난해 한국의 일본 불화수소 수입액은 2020년과 비교했을 때 34% 늘었다. 올해 1~4월에도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했다. 포토레지스트의 수입액도 전년 대비 두 자릿수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수입액이 미미하게 감소하는 데 그쳤다.
수입액 상승은 반도체 소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한국이 지난해 일본에서 수입한 반도체 제조 장비의 금액은 총 63억 달러(약 8조 1000억원)으로 전년대비 44%나 늘었다.
신문은 "한국이 반도체 관련 품목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일본에서 수입하는 금액이 증가세로 돌아서는 등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움직임이 보인다"며 "한일의 반도체 공급망이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신문은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로 인해 한국 기업 사이에서 일본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는 점도 지적했다. 신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대기업은 수출규제 이후 대체 공급자를 육성하기 위해 자금 지원과 기술 공유에 나서고 있다"며 "이들이 많은 일본 기업의 유력한 고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소재·장비 국산화로 일본 기업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신문은 윤석열 정부의 태도에 주목했다. 신문은 "전 정권의 지원에서 출발한 반도체 소재·장비 국산화를 굳이 현 정부에서 중단할 이유는 없다"며 "윤 정부 내부에서는 '경제 안보의 관점에서 소재 국산화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고 전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19년 7월 1일 "한일 간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반도체 관련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이는 2018년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데 대한 보복 조치로 해석됐다. 이후 한국 정부는 연간 2조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해 반도체 소재·부품 국산화에 나섰고, 시민들 사이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달 9일 퇴임사에서 "우리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자립의 기회로 삼았고,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고 그간의 국산화 성과를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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