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홍제3구역 재건축 조합이 구역 내 성당과 10년 넘게 소송전을 벌인 끝에 결국 성당에 대한 강제집행 초읽기에 들어갔다.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서 종교시설을 둘러싼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운데 또다시 이 같은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조합과 성당 간 협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어 조만간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종교시설 갈등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건축 속도를 늦추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도시정비법 등 관련 법안에 종교시설 처리 방안을 명확히 규정하는 방식으로 법령을 개정하거나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5일 정비 업계에 따르면 홍제3구역 재건축 조합은 21일 법원에 무악재성당에 대한 부동산 강제 집행을 신청했다. 홍제3구역 재건축은 서울 지하철 무악재역 3호선 인근에 아파트 10개 동, 620가구를 짓는 사업으로 2022년 관리처분인가를 받았다. 모든 주민이 7월 이주를 끝냈지만 성당 이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철거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무악재성당은 재건축 추진 초기부터 사업에 반대하며 성당 존치를 주장했던 반면, 조합은 성당이 구역 내부에 있어 제척할 수 없으니 위치를 옮겨 달라고 요구해 왔다.
이 때문에 조합과 성당은 10년 넘도록 각종 소송과 협의를 반복하며 갈등을 이어 왔다. 조합은 2012년 성당에 매도청구권을 행사하는 내용의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승소했다. 더욱이 8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이 건물인도 소송에서 조합의 손을 들어줘 가집행(강제집행)을 실시할 수 있는 권리까지 확보했다. 조합의 한 관계자는 “성당과 합의가 늦어질수록 조합의 금융 비용 부담이 커진다”며 “내년 착공을 위해 더는 합의를 미룰 수 없어 강제집행을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조합은 성당과 막판 협의를 이어가는 중이다. 조합은 성당에 보상금 132억 5800만 원 지급 혹은 구역 내 성당 이전 부지(약 1255㎡) 및 건축비 일부 제공 중 한 가지 안을 선택하라고 제안한 상태다. 강제집행에 대한 조합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성당도 최근 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조만간 합의가 타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성당 측 관계자는 “조합과 협의를 하는 과정”이라며 “자세한 상황은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정비사업에서 조합과 종교시설이 이전을 놓고 갈등하는 것은 흔하다. 오랜 기간 지역에서 활동한 종교시설 입장에서는 이주해서 기반을 다시 닦는 것이 쉽지 않고, 구역 내에 시설을 다시 짓는다 해도 건축비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철거 직전까지 법적 다툼을 벌이며 갈등이 장기화하고, 이것이 사업 지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서울 성북구 장위10구역 재개발 조합은 2017년 관리처분인가를 받았지만 구역 내에 위치한 사랑제일교회가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하고 강제집행까지 막아서며 약 8년간 사업이 멈췄다. 결국 조합은 6월 사랑제일교회를 구역에서 제척해 올 연말에야 착공할 예정이다. 서울 은평구 갈현1구역 재개발은 올해 3월 구역 내 은현교회에 대한 강제집행을 실시했다. 나머지 건물은 철거가 모두 끝났지만 교회와 이전 합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합은 최근 교회와 합의를 이뤄 조만간 보상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종교시설 갈등과 소송전으로 인한 정비사업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행 도시정비법은 종교시설 처리 및 보상 방안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지 않아 갈등이 생기면 소송전으로 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종교시설 처리 방안을 명문화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재산권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 수 있어 쉽지 않다”며 “사업이 늦어질수록 주택 공급도 차질을 빚는 만큼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가 2009년 만든 뉴타운 사업(재정비촉진사업) 종교시설 처리 지침을 일반 정비사업에도 확대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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