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은 필자를 늘 의아하게 만든다. 민주당 진영에서조차 올가을 중간선거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만큼 바이든의 지지율이 바닥권에 머무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고공 행진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다. 그러나 바이든의 지지율 하락은 물가 상승 이전부터 시작됐다. 그의 지지율을 짓누른 최대 요인은 민주당과 무당파 유권자들의 이탈이다. 갤럽이 내놓은 여론조사 수치에 따르면 취임 이후 민주당 유권자들 사이에서 98%를 기록했던 그의 지지율은 85%로 주저앉았다. 2021년 초 현재 확실한 좌익 구성원으로 간주되는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중 상당수가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또한 흑인, 히스패닉과 극빈층이 보여줬던 뜨거운 지지 열기도 식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취임 후 같은 시점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율은 공화당 유권자들만을 떼어 놓고 볼 때 89%에서 87%로 단 2%포인트 떨어지는 데 그쳤다.
바이든은 트럼프나 조지 W 부시와 달리 자신의 소속 정당을 휘어잡지 못한 듯 보인다. 민주당의 좌익 세력은 같은 당 출신의 현직 대통령에게 늘 실망했고 수시로 반항했다. 린든 B 존슨 대통령과는 베트남 문제로 갈라섰고 결국 당의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한 존슨은 재선 출마를 포기했다. 휴버트 험프리 부통령이 억지 춘향 격으로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을 받았지만 선거에서 완패했다. 좌익 세력은 현직 대통령 대신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을 대선 후보로 밀어주는 등 지미 카터에게도 반기를 들었다. 빌 클린턴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수주의자들을 끌어안으려는 그의 전략 탓에 클린턴은 강경 좌익 세력으로부터 매서운 질책을 받아야 했다.
소속 정당을 장악한 민주당 출신 대통령을 찾으려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행정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그때에도 진보주의자들 사이에 루스벨트 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이든이 직면한 두 번째 문제는 설사 그가 빈곤 계층과 근로 계층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제정책을 제시한다 해도 유권자들이 구체적인 정책 분석에 바탕을 둬 그에게 표를 던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시대에 급부상한 포퓰리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문화적 이슈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이다. 다소 이상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불확실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경제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축 삼아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좌파는 문화적인 면에서 절대 혁명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둬야 한다. 1996년 국정 연설에서 클린턴이 공립학교 학생들의 교복 착용 의무화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클린턴은 미국민을 향해 “나는 1960년대의 급진적 히피가 아니다. 보라, 심지어 나는 교복 착용을 지지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클린턴은 220명의 대의원을 확보해 재선에 성공했다. 상대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는 8.5%로 1984년 이후 선거에서 승리한 역대 대통령 후보들 가운데 가장 컸다.
공화당 후보들의 중간선거 전략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상대방의 약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우선 그들의 1차 공격 대상은 인플레이션이다. 또 사회적으로 의식화된 학교와 기업에 무차별한 공격을 퍼붓는다. 취소 문화, 교육의 급진적 변화 등도 공격 대상이다. 제임스 카빌이 설파했듯 민주당 좌파의 멤버들이 사회적 이슈에 관해 입을 열 때마다 “라틴계(Latinx)” “유색 커뮤니티(communities of color)” 등 그들의 용어 선택에 많은 사람이 소외감을 느낀다. 2021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Latinx”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히스패닉계 미국인들의 비율은 전체의 4%에 불과했다. 만약 좌파가 노동 계층과 소수계의 정당이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그들이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문화적·사회적 이슈는 복잡하고 까다롭다. 낙태, 동성애자 권리 등은 경제 문제와 달리 대쪽 쪼개듯 확실하게 의견이 갈리는 이슈가 아니다. 따라서 상징 조작, 언어, 그리고 메시지 전달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런 이슈들에 관해 민주당은 거리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평범한 보통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가장 극단적인 지지자들의 입맛을 맞추려 든다.
바이든의 지지자들은 그가 급진적인 사회정책이나 문화 정책을 지지한 적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아마도 사실이겠지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가 했던 것과 달리 당내 극좌파들과 마주 앉아 이에 관해 터놓고 얘기한 적도 없다. 이들 중 일부 이슈에 대해서는 아예 자신의 입장조차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도 교복 착용을 지지하는 연설을 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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