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스톰(총체적 복합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에 의한 글로벌 공급망 혼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곡물과 원유를 필두로 한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선진국 중심의 인플레이션과 긴축 통화정책 등 국내외으로 지정학적(地政學的), 기정학적(技政學的)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피해가 주로 서민들에게 큰 타격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이다. 유엔은 최근 발간한 ‘글로벌 위기 대응 보고서’에서 퍼펙트스톰으로 인해 94개국, 16억 명이 생계에 위협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지구촌’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고 세계화가 최선의 지향점인 것으로 배워왔다. 하지만 최근 국제 정세는 그와 반대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세계 각국의 분업화 심화로 글로벌 공급망 중 하나의 체인만 끊어져도 모든 연결이 헝클어지는 등 글로벌화의 허울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기업들의 리쇼어링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국가별 자국 우선주의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제 와서 보면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출규제는 예고편에 불과했을 정도다.
이렇게 지구촌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국가 패권이 돼버린 과학기술이 반드시 지향해야 할 것은 국제 협력을 통한 국제화다. 최근 한국연구재단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피인용 횟수가 상위 1%인 논문 중 71.9%가 국제 협력에 의한 연구 결과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의 경우에는 80% 이상을 국제 협력 논문이 차지하고 있다. 논문이 많이 인용됐다는 것은 그만큼 연구의 질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수치다.
반면에 우리의 국제 협력 현황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2020년에 발표된 논문 중 국제 협력에 의한 논문은 35% 수준이다. 일견 높아 보일 수 있지만 유럽의 과학 선진국이 40~50%를 보이는 것에 비하면 아직도 낮은 수준이다. 이보다 심각한 것은 피인용 횟수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논문의 피인용 횟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48개국 중 36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특허의 경우도 국제 협력을 통해 이뤄진 것은 전체 특허 중 2.3%에 불과하다. 국제 협력 정도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개발(R&D)은 갈라파고스화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재직 중인 외국인 연구자 비율은 1.7% 불과하며 특히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 유치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분자생물학의 세계적 연구 거점으로 알려져 있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의 경우 500여 명 연구자의 국적이 50개국 이상으로 구성돼 있다. 연구자들의 다양성과 우수성이 세계 최고의 연구 결과를 도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혁신 역량은 OECD 국가 중 5위를 차지했다. 또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서는 우리나라의 과학 인프라 경쟁력을 세계 3위로 평가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혁신 역량에 국제 협력을 효과적으로 덧입힌다면 우리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지게 될 것이다. 최근 ‘호라이즌 유럽’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준회원국 가입 논의가 시작됐다. 가입이 성사된다면 유럽 국가들과의 공동 연구가 활성화되고 우리의 연구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조선 말기의 역사를 통해 쇄국(鎖國)이 국가 미래에 얼마나 뼈아픈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적인 문화 강국으로 부상했고 세계인들은 우리나라를 과학기술 중심의 혁신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말고 개방과 협력으로 세계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과학기술 중심의 새로운 미래 국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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