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최고 메이저 대회인 US 여자오픈을 두고 사실상 ‘코리아 여자오픈’ 아니냐는 말이 나온 때가 있었다. 2008년 박인비부터 2020년 김아림까지 13년간 아홉 번을 한국인이 우승했다. 한국인 첫 우승인 1998년 박세리부터 치면 한국 선수의 우승이 총 열한 번이다.
그런 US 여자오픈에서 호주 동포 이민지(26·하나금융그룹)가 77년 대회 역사를 바꿔놓았다. 최소타 신기록을 새기며 여유롭게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민지는 호주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두 번이나 나간 호주의 자랑이지만 부모가 한국인이고 한국말도 잘한다.
이민지는 6일(한국 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니들스로지앤드골프클럽(파71)에서 끝난 시즌 두 번째 메이저 제77회 US 여자오픈에서 최종 합계 13언더파 271타로 우승했다. 2위인 일본계 미국 선수 미나 하리가에(9언더파)를 4타 차로 따돌렸다. 271타는 US 여자오픈 72홀 최소타다. 1996년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1999년 줄리 잉크스터(미국), 2015년 전인지(28)가 세운 272타를 1타 앞섰다.
이민지는 “어릴 적부터 늘 꿈꿔온 US 여자오픈 우승을 실제로 해내다니 감격스럽다”며 “많은 소녀와 소년들도 마찬가지로 스포츠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제가 좋은 롤모델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시상식 중 남동생 이민우(24)의 축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이민우도 DP 월드투어(옛 유러피언투어)에서 활약하는 골프 선수다.
이번 대회에는 여자골프 사상 가장 많은 1000만 달러(약 125억 원)의 총상금이 걸렸다. 우승 상금도 180만 달러(약 22억 5000만 원)에 이른다. ‘잭팟’을 터뜨린 이민지는 “상금을 생각하고 친 것은 아니지만 (상금 증액은) 투어나 여자골프를 위해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했다.
최근 LPGA 투어는 ‘민지 천하’다. 이민지는 지난달 파운더스컵 우승 등 최근 출전한 3개 대회에서 2승을 챙겼다. 올 시즌 9개 대회에서 우승 두 번에 공동 2위와 공동 3위를 한 번씩 했다. 이날로 시즌 상금 1위(약 262만 5000달러)를 꿰찬 이민지는 평균 타수, 올해의 선수 포인트에서도 선두를 달리며 독주 체제를 갖췄다. 2015년 LPGA 투어 데뷔 후 통산 8승(메이저 2승)째이고 특히 최근 네 차례 메이저에서 지난해 7월 에비앙 챔피언십을 포함해 2승을 가져가면서 큰 무대에 강한 면모도 뽐내고 있다.
3라운드까지 대회 54홀 최소타를 작성하며 3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린 이민지는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버디와 보기 4개씩으로 이븐파 71타를 쳤다. 첫 두 홀 연속 버디로 5타 차로 달아났고 12번 홀(파4) 3m 버디를 넣고는 2위와 격차를 6타로 벌렸다.
한국 국적 선수 중에서는 신인 최혜진(23)이 7언더파 단독 3위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세계 랭킹 1위 고진영(27)은 6언더파로 4위다. 최혜진과 고진영은 각각 8억 5000만 원, 6억 100만 원의 두둑한 상금을 받았다. 한국 선수의 메이저 우승은 2020년 이 대회의 김아림으로 멈춰 있다. 메이저 7개 대회에서 연속으로 트로피를 들지 못했는데 이는 11년 만에 최악의 메이저 우승 가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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