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통해 수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배우 윤박에게 '기상청 사람들'이 그랬다. 거절하려고 했던 작품이었지만 감독의 설득을 통해 참여하게 됐고, 성공적으로 입체적인 캐릭터를 그리며 호평을 받았다. 윤박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만의 열정이 베어 있었다.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극본 선영/연출 차영훈/이하 '기상청 사람들')은 기상청 사람들의 일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윤박이 맡은 한기준은 기상청 수석대변인으로 10년 동안 연애한 진하경(박민영)과 결혼을 앞두고 있던 중 기상청 출입 기자 채유진(유라)과 사랑에 빠진다. 초고속으로 채유진과 결혼한 만큼 위태로운 결혼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한기준이 하는 행동과 말, 그리고 지향점은 인간 윤박과 정반대에 있었다. 한기준을 이해할 수 없었던 윤박은 거절하려는 마음으로 감독 미팅에 나갔다. 당시 차 감독은 윤박에게 "한기준이 지질하고 나쁘게 보일 수 있는 모습이 있어서 자칫 나빠 보일까 봐 걱정이다. 윤박이 갖고 있는 좋은 모습과 상쇄돼, 시청자들에게 동의를 받을 순 없어도 이해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득했다.
"결국 감독님에게 설득됐어요. 마음이 동하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감독님 말씀대로 '시청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됐어요. 정말 나쁘게만 보일 수 있는 캐릭터라 도전하는 마음으로 임했죠. 원형 탈모를 걸릴 정도 스트레스가 극심했습니다. 그래도 반응이 좋아서 감사해요. 거절하려고 했던 작품이라 그런지 '하늘이 내려 줬구나'라는 마음이 들어요."(웃음)
10년 동안 연애한 연인을 배신하고 새로운 연인을 선택한 한기준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한기준의 진정한 사랑은 채유진이었다고 결론지었고, 채유진과 결혼 중에 발생한 갈등 역시 사랑으로 해석했다. 그 마음을 중심으로 감정의 곁가지를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나아가 결혼 이후 진하경의 행보를 주시하는 모습도 채유진과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이해가 안 간 부분이죠. 신혼이면 가정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한기준은 바깥으로만 돌잖아요. 그것도 사랑하는 채유진과의 결혼 생활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죠. 진하경과 계속 만나고 부딪히는 것도 채유진과 관계 발전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해요. 진하경과의 관계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가 아닌 거죠. 참 가정 안에 집중했으면 좋았을 걸 싶어요."
이해가 안 가는 한기준을 연기하면서 배운 점도 많았다. 윤박은 사건이나 갈등이 생길 때, 밖으로 향하는 한기준을 보면서 "내 안에서 해결하고, 뿌리를 봐야겠구나"라고 마음먹었다. 또 연기적으로도 한층 성장한 걸 느꼈다.
"'기상청 사람들'은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가 있는지 보려고 도전한 작품이에요. 저 나름대로 배우로서 장점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내가 장점이 있구나?'라는 용기를 얻게 됐어요. 어떤 캐릭터를 만났을 때 시청자들에게 벽을 허물 수 있고, 이해가 될 법한 인물로 표현했으니까요. 흡수될 수 있는 연기를 한다는 걸 깨달은 게 가장 크게 배운 점이에요."
이 모든 걸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윤박은 최대한 유연하게 한기준을 표현했다. 변주가 가능한 인물이란 걸 먼저 이해시켜야 변화하는 마음 역시 이해시킬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정형화되지 않은 캐릭터로 그리는 과정은 자유분방한 느낌이었다고. 날 것 그대로를 표현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편안함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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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라면 저럴 수 있겠다'라고 먼저 생각해야 캐릭터가 유지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채유진을 만날 때는 이런 모습,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이런 모습 등 변주가 가능하게 열어놓은 거죠. 그래야 조금 말도 안 되는 한기준의 심리를 시청자들이 받아들이니까요. 스스로 힘든 것 중에 하나는 제가 한기준을 연기하면서 어쩔 수 없어 나쁜 모습을 미화시키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건 한기준이 아닌 제 욕심이니까요. 최대한 본연의 것을 가져가면서 거부감이 안 들게 표현하려고 했죠."
외적인 부분도 한기준의 성격을 보여주는 데 한몫했다. 윤박은 한기준이 보이는 걸 중요시하는 사람이라고 해석하고, 대변인으로 일을 할 때는 일부러 멋있는 척을 하려고 표현했다. 늘 쓰리피스 수트를 갖춰 입으면서 일상의 지질한 모습과 극명한 대비를 두려고 했다.
윤박은 어느덧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윤박은 "좋은 기회들이 많이 있었는데 나의 연기력 부족으로 조금 아쉬웠던 시간들이었다"고 지난 10년을 돌아봤다. 그는"연기를 잘 한 사람이 아닌데 운 좋게 데뷔했다. 그래도 감사한 게 전보다 지금이 낫다는 걸 반복했다는 것"이라며 "예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모습이 된 것 같아서 스스로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자평했다.
"아직도 바스트를 찍는 건 어려워요. 풀샷이나 투샷은 편한데 이상하게 그렇다라고요. 아직 고쳐지지 않은 점이죠. 가장 달라진 건 현장에서 스스로를 믿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내가 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니까 자신감도 더 생겼어요. 예전부터 칭찬을 잘 못 받아들이는 성격인데 그것도 받아들이는 중이에요."(웃음)
윤박은 자책하고 받아들이고, 이를 발판 삼아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10년 동안 꾸준히 배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성장하는 걸 스스로 즐기기 때문이다.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원동력이 된다.
"연기의 매력은 어떤 신에 목표가 있고, 그걸 잘 수행했을 때 카타르시스가 온다는 거예요. 또 그걸 좋게 봐주시면 엄청 만족스럽죠. 잘 준비해서 OK 됐을 때 희열감도 있지만, 못하면 한없이 지하로 파고드는 게 연기기도 해요. 영상으로 계속 남아 있으니까, 한 번 찍으면 돌이킬 수 없잖아요. 다양한 감정이 드는 게 연기의 매력이라고 볼 수 있죠."
윤박은 앞으로의 10년을 꿈꾸기도 했다. 20년 차가 됐을 때 함께 호흡을 맞추는 배우, 감독들이 신뢰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다. 다만 변수는 결혼이었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윤박은 결혼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하고 있는 중이다.
"만약 결혼을 한다면 정말 달라질 것 같아요. 아마 결혼을 하면 안정을 추구할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도전거리를 계속 찾을 것 같아요. 어떻게 될지 가늠이 안 돼요. 가장 큰 변수가 있는 셈이에요. 옛날에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좋은 남편이 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정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데, 아버지에게 보고 배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반대로 아내가 아이만 좋아할까 봐 무섭기도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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