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를 관통해 그림을 그리며 ‘최고령 현역 화가’로 불리던 김병기 화백이 1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106세.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 근현대미술의 산증인으로 불렸다. 고희동에 이은 우리나라 두번째 서양화가인 김찬영(1889~1960)의 아들로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동갑내기 고향 친구이중섭과 평양종로보통학교를 같이 다녔다. 김병기는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운 선친의 뒤를 이어 도쿄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서 수학할 때는 김환기·유영국과 함께 공부했다.
귀국한 그는 북조선문화예술총연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을 지냈으나 북한의 전체주의와 맞지 않아 1947년에 월남했다. 남한으로 와서는 한국문화연구소 선전국장, 종군화가단 부단장 등을 지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에는 피난지 부산의 남포동다방에서 ‘피카소와의 결별’을 발표했다. 이후 서울대에서 강의했고, 서울예고 설립 당시 미술과장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맡은 그는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석했다가 홀연히 미국에 남았다.
안온한 명성에 만족하지 않고 예술가로서의 꿈을 더 키우기 위해 미국에서 활동하던 그는 국내 화단에서 점차 잊혔다. 1986년에 미술평론가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그를 다시 불러냈고,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김병기:감각의 분할’ 전이 귀국 복귀전인 셈이었다. 2017년 101세에 대한민국예술원 최고령 회원으로 선출됐고 지난해 은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100세를 넘기고도 현역화가던 고인은 지난 2019년 가나아트센터에서 대규모 신작 개인전을 열었고, 지난해 대한민국예술원 미술전에도 신작을 발표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4일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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