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력한 통화 긴축 예고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긴축 발작’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고 있다. 설 연휴 기간에 뉴욕 증시가 반등했으나 시장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오히려 몇몇 신흥국가에서는 해외 자본 이탈과 통화가치 급락 등으로 위기의 적신호가 켜졌다. 급기야 “달러 부채의 만기를 당장 연장하라”는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경고까지 나왔다. 연준 이코노미스트로 10년 동안 활약한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긴축은 과거와 달리 기준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QT)이 일정 기간 겹칠 가능성이 높다”며 “만약 두 개의 긴축 카드가 현실화한다면 그 충격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번에는 과거 긴축기와 비교가 안 된다”고 누차 강조하면서도 불필요한 시장 혼란을 의식한 듯 표현 하나하나를 조심스러워했다.
-지난해 12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치였다. 연준이 물가 급등 가능성을 과소평가한 것은 아닌지.
△물가 전망에 대한 판단 착오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전망했던 경로를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예상과 달리 인플레이션이 오래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험로가 예상된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초유의 일이다. 그로 인한 예측의 불확실성도 있다고 본다.
-왜 물가 전망이 크게 빗나갔다고 보는가.
△경제학자들이 물가를 전망할 때 대개 수요와 공급 측면을 나눠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학을 처음 배울 때부터 그렇게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은 수요와 공급 두 측면에서 함께 움직였다. 코로나19 직후 봉쇄로 수요가 확 줄었고 동시에 공급도 대폭 축소됐다. 이후 수요는 차츰 회복되는 데 비해 공급 병목과 생산 차질이 쉽게 해소되지 않으니 물가가 순식간에 급등한 것이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난 1970년대 오일 쇼크의 악몽을 경고하기도 하는데.
△래리 서머스 전 재무부 장관이 그런 우려를 제기한다. 물가 통제력이 있다고 믿고 그렇게 가정해야 하지 않겠나. 마냥 한없이 오르지는 않겠지만 기대만큼 빨리 잡히지는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와 겹쳐 연준의 행동에 따른 물가 반응 속도가 더딜 수 있다. 미국이 물가를 얼마나 빨리 잡을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긴축 속도에 달려 있다.
코로나 겹친 인플레…긴축해도 물가 반응 속도 더딜 것
-연준은 오는 3월 기준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했다. 연준의 긴축 신호를 분석해달라.
△정보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시장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올해 회의 때마다 인상한다(7회)는 관측이 있지만 이는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한다는 극단적 시나리오다. 올 하반기에는 양적 긴축(QT)까지 착수할 것으로 예상돼 두 개의 카드를 조합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올해 최소 네 차례 인상할 것으로 보는 게 무난하다. 점도표(위원별 금리 전망 표)가 공개되는 3월이면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3월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릴 가능성은.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인플레이션을 빨리 잡으려면 충격 요법이 필요할 텐데 그 정도로 ‘타이트’하게 할까 싶다. 연준 내부의 의견이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통일된 목소리가 없고 정리된 형태의 멘트가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긴축 강도를 두고 깊이 고심한다고 볼 수 있다.
-금리 인상 외에 양적 긴축도 예고돼 있다. 연준 자산은 9조 달러에 육박한다. 적정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적정 수준은 없다고 본다. 연구도 별로 없고 과거의 경험도 없다시피하다. 2017~2019년 양적 긴축을 단행했지만 그때도 자산 매각 총량 목표를 공개하지 않았다. 기준금리는 과거(중립 금리·2% 초반)로 되돌아간다는 전제가 있지만 연준 자산의 적정치는 현재로서는 미지의 영역이다.
-연준은 왜 양적 긴축 목표량을 공개하지 않는가.
△경제적 여파가 어느 정도일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매각 대상 채권의 만기일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 과거에 잠깐 해봤지만 그에 대한 연구를 해보기도 전에 코로나19 사태로 다시 돈을 풀었다.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은 이중의 충격인데.
△과거 긴축기와는 완전히 다른 경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에는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가 아예 없었다. 그나마 2017~2019년 단행한 양적 긴축은 매우 느렸고 강도도 약했다. 거둬들인 돈이 1조 달러도 채 되지 않는다. 시장에도 영향이 거의 없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미국의 긴축은 현재로서는 일정 기간 기준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이 겹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연준이 두 개의 긴축 카드를 동시에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은 초유의 일이다. 연준조차 충격파를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얼마 전 달러 부채가 많은 몇몇 나라에 조심하라고 경고를 보낸 연유도 여기에 있다.
해외 자본, 급할 때 몇몇 나라 집중적으로 자금 빼나가
-다른 나라의 사정은 연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고려 대상이 아닌가.
△고려하겠지만 미국에도 부정적 영향이 되돌아오는 경우에만 국한할 것이다. 이머징마켓 몇 군데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연준의 관심사는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이라는 두 개의 카드를 조합해 얼마나 수요를 억제할 수 있느냐다.
-미국의 급격한 긴축이 중국 견제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발등에 떨어진 인플레이션 불 끄기가 더 급하다. 중국을 견제할 정도의 여유는 없을 것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훗날 그런 흐름이었다는 분석이 혹시 나올지도 모르겠다.
-연준이 시장의 불안을 달래는 제스처나 조치는 없겠는가.
△성장과 고용 등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금융시장 자체는 구제 대상이 아니다. 성장 훼손도 어느 정도 각오할 것이다.
-질서 정연한 출구 전략 가동이 어렵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우리에게는 외환 위기 트라우마가 있다.
△우리는 다른 이머징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전하다. 경제 규모도 커졌다. 하지만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은 이머징 국가로 취급된다. 비(非)기축통화국의 한계다. 이번 긴축의 강도가 과거와 다를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현실적 리스크는 자본 유출이다. 긴축의 쓰나미에 몇몇 기축통화국을 제외하면 어느 나라도 안심할 수 없다. 해외 투자가들은 급할 때 전 세계적으로 2%씩 균일하게 자금을 빼내지 않고 몇몇 나라에서 집중적으로 인출해간다. 펀더멘털(경제 기초 체력)이 취약하면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한미 통화 스와프가 지난해 말로 종료돼 아쉽다는 지적이 많다. 상설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상설 채널이 열리면 단기적으로 매우 좋은 일임은 분명하지만 중장기적 효과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한미 통화 스와프는 원래 없다가 예기치 않은 위기나 급할 때 생겨야 효과가 크다. 2008년 한미 통화 스와프가 그랬다. 통화 스와프를 믿고 거시 건전성 관리에 소홀할 우려가 있다.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 대안 카드가 없다는 문제도 있다. 급할 때 쓸 수 있는 비상 창구를 남겨두는 것도 방법이다.
MMT실험?…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 ‘낙인’
-한국은행은 통화 긴축의 고삐를 더 죌 태세다. 반대로 재정 정책은 대선 국면을 맞아 방만해질 소지가 크다.
△일시적 위기 국면일 때 확장적 재정 정책이 불가피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은 대외 신인도의 잣대로 성장률 못지않게 중요하다. 대선 이후가 더 중요하다. 누가 당선되든 건전 재정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대화폐이론(MMT)을 동원해 돈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나오는데.
△만약 MMT를 했을 때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에 대한 대외 신인도가 그대로 유지되겠는가. 한국이 믿을 만한 나라인지 의문이 생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연준의 양적 완화 때 그런 기제가 일부 작동했지만 기축통화국이니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기축통화국에서 감히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한은 적립금이 20조 원쯤 된다. 정치권에서 적립금을 줄여 재정으로 활용하자고 한다. 의원 입법도 나왔다.
△지금 당장 쓸 것이냐, 아니면 나중에 활용할 것이냐의 문제다. 한은 적립금이 앞으로도 계속 많이 쌓인다면 지금 당장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한은 적립금 규모는 금리와 환율 등에 따라 바뀐다. 과거 적자를 본 적도 있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5월에 출범하는 차기 정부에 정책 조언을 한다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존의 지식과 사고 체계가 헝클어졌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대처할 텐데 코로나 이후 불확실성이 커졌다. 불확실성이야말로 가장 큰 리스크 아닌가. 정책 조합도 쉽지 않은 과제다. 이럴 때일수록 ‘정책이 틀릴 수 있다’는 열린 자세를 갖고 유연한 사고와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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