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임의 가입 통계를 찬찬히 살펴보면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정보를 습득하고 영악하게 대처하는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사업장 가입자는 ‘유리지갑’이다 보니 보험료는 대략 17만 원 구간을 정점으로 하는 정규 분포를 이루고 있다. 임의 가입자도 사업장 가입자와 똑같은 비율로 보험료를 낸다고는 하지만 소득을 스스로 정한다는 점이 다르다. 사실상 9만 원 이상에서 보험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임의 가입자로서는 당연히 납입액 대비 가장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소득을 선택할 것이다. 실제로 전체 임의 가입자의 64.5%가 가장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보험료 9만 원 구간에 몰려 있다. 보험료 11만 원까지 구간을 조금 확장하면 82.5%나 된다. ‘역선택’으로 볼 수 있다. 18만 원을 낸 가입자는 9만 원을 낸 가입자에 비해 수익률이 크게 떨어진다. 똑같이 20년 가입했다고 가정했을 때 연금액이 1.6배밖에 안 된다. 두 배 낸 것에 비해 덜 받는 것이다. 보험료 27만 원으로 세 배를 낸 가입자가 받는 연금액은 9만 원 낸 가입자의 1.9배에 불과해 더욱더 불리하다. 이미 임의 가입자들은 이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
정년이 가까울수록 임의 가입자는 증가한다. 지난 2021년 8월 말 통계를 보면 국민연금 임의 가입자 중 50~59세가 52.1%를 차지하고 있다. 40~49세는 32.3%고 40세 미만은 15.6%밖에 되지 않는다. 젊은 세대일수록 연기금 고갈과 지급 조건 악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는 인간은 가까운 이익을 훨씬 더 선호한다는 행동경제학적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국민연금 임의 가입자는 증가 일로에 있다. 2006년 말에 2만 6,991명에 불과했던 임의 가입자 수가 2021년 말에는 38만 5,795명으로 14배 넘게 늘었다. 임의 가입은 국민연금에 가입할 의무가 없지만 자진해 가입하는 것이다. 따라서 임의 가입자의 꾸준한 증가는 국민연금이 다른 어떤 방법보다 노후 대비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음을 입증한다. 임의 가입이 재테크에 밝은 강남 주부들의 노후 대비 수단이 됐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지역별 인구수 대비 임의 가입자 비율은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만 각각 1.15%, 1.04%로 유일하게 1%를 넘었다.
국민연금 임의 가입자 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해왔다. 유일한 예외는 2013년이다.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하는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해 차등 지급하기로 함에 따라 국민연금 장기 가입자가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다는 논란이 일면서 임의 가입자가 감소했다. 이처럼 시장은 똑똑하고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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