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Cyborg), 현대의 첨단 기술 문명이 낳은 새로운 존재를 상징하는 말 같지만 어찌 보면 멀리 있지 않다. 첨단 기술에 긴밀하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우리 모두는 사이보그 개념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휠체어, 보청기, 녹음기 등 각종 보조 기구와 함께 지내야 하는 장애인들은 가히 ‘장애인 사이보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제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김초엽 작가와 연극 배우 활동을 겸하고 있는 김원영 변호사는 신간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본인들을 ‘장애인 사이보그’라고 칭한다. 두 사람 모두 장애인이다. 김 작가는 16세부터 청각 장애로 보청기를 끼고 생활하며, 태어날 때부터 1급 지체장애인인 김 변호사는 15살부터 휠체어를 탔다. 두 사람은 김 변호사가 지난 2018년 이메일을 통해 김 작가에게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고 제안한 것을 계기로 뭉쳤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신간 '사이보그가 되다'다.
이들은 책에서 장애와 과학기술의 결합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과학기술이 장애를 종식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짚고 간다. 기술의 발전이 장애를 없애줄 것이라는 ‘기술 유토피아’ 중심의 사고를 정면 비판한다. 과학·의학 기술이 질병 치료와 손상된 신체 기능의 개선에 일정한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지만, 실생활에서 기계와 신체가 결합하는 일이 매끄럽지 만은 않다. 김 작가는 “누군가에게는 소리를 더 잘 듣게 하는 기술보다 수어나 문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로봇 외골격보다 휠체어가 더 적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장애를 다루는 각종 담론이 장애인들을 그저 소비하기만 한 뒤 소외시키는 현실도 지적한다. 김 작가는 한 통신사가 인공지능(AI) 음성 합성 기술을 이용해 청각장애인에게 목소리를 선물하는 내용으로 광고를 낸 사례를 언급한다. 정작 청각장애인 당사자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청각장애인에게서 듣고 싶은 목소리를 만들어냈을 뿐, 결과적으로 장애인을 돕는다고 만든 기술은 그들을 소외시킨다는 지적이다.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장애를 정상인과 비정상인 사이를 나누는 기준으로 바라보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김 변호사의 지적대로 과학이 장애를 여전히 결여의 개념으로만 간주하는 이상 그가 타는 휠체어는 아무리 기술적으로 발전해도 보행 능력 ‘없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보조 기기일 뿐이다.
두 사람이 보다 강조하는 것은 장애가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종의 ‘낙인’이 되지 않는 삶이다. 기술과 사회 역시 이러한 전제 아래 ‘지금, 여기’ 살아 있는 장애인의 삶을 중심에 두고 다시 설계돼야 한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세월이 지나면 기술이 발전해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장애가 있어도 생활이 불편해지지 않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휠체어가 불편하지 않게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방송이나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서비스는 큰 기술이나 돈을 들이지 않아도 당장 장애인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시설이다.
이런 관점에서 두 사람은 과학기술 현장에 적극 개입하는 장애인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김 작가는 요리 전 과정을 촉각이나 소리로 확인할 수 있도록 꾸며진 시각장애인을 위한 주방, 어떤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섬세한 접근성 설정을 갖춘 온라인 게임 등을 언급한다. 휠체어와 떨어질 수 없는 김 변호사는 주로 휠체어, 의족 등 신체와 결합한 과학기술을 통한 존재론을 탐색한다. 인간을 배제하려는 듯 매끄러운 디자인에 불편을 호소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장애인의 역량에도 주목한다.
김 변호사는 책의 후반부에서 ‘연립’이라는 개념도 언급한다. 그가 기술과 결합한 장애인의 몸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인간과 다른 인간, 과학과 기술, 문화와 환경의 네트워크 속에서 서로의 취약함을 채우며 연립하는 관계에 주목하기 위함이다. 그 힘으로 장애를 극복한 영웅을 상찬하거나 기계와 인간,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오가는 하이브리드적 존재를 찾는 것 같은 거창한 목적이 아니다.
책은 두 저자의 대담으로 마무리되는데, 이들이 서로의 차이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김 작가는 평소 보청기를 잘 끼지 않는데, 휠체어를 신체의 일부로 느끼며 그 미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김 변호사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반대로 김 변호사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공동체에 오랜 시간 속하지 않았어도 장애학의 관점을 체화하여 세계를 바라보는 김 작가의 시각을 놀라워한다. 이렇게 서로의 차이를 알아가고 공존하려는 모습이야말로 두 저자가 ‘사이보그’라는 비유를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바람직한 세상이 아니었을까. 1만7,800원.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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