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은 의외로 효과가 없다. 2004년 미군이 이라크 전쟁 포로를 학대하는 영상이 공개돼 큰 파장을 몰고 왔지만, 한편으로 이는 신체적·정신적 압박이 좋은 정보를 얻어내거나 회유·설득하는 데 별다른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을 일깨웠다. 일상에서도 위협과 으름장이 진정한 순응을 끌어내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협조하는 척하다가 자신을 통제하려는 사람의 권위를 역습한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를 깨닫고 테러 용의자에 대한 신문 방식의 개선을 목표로 주요억류자신문그룹(이하 HIG)을 발족했다. FBI, CIA, 국방부 등 미국 정부기관의 관계자로 구성된 HIG는 모범적인 신문 전략을 모색하던 중 어느 부부 심리학자를 찾아와 연구를 의뢰했다. 리버풀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와 연구원인 이들 부부는 전 세계 정보요원·검찰·경찰·테러용의자 등과 2,000시간 이상의 인터뷰 끝에 강압은 상대의 정보를 캐내는 데 효과가 없음을 재차 확인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대의 속내를 끌어낼 것인가? 신간 ‘타인을 읽는 말’은 이들 부부 심리학자가 축적된 연구를 통해 찾아낸 심리 대화법을 소개한다.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유대 관계를 맺을 찰나의 기회를 가진다. 인질범의 협박, 폭력 사건 등 극한의 순간일지라도 “당신이 누군가와 한번 유대 관계를 맺으면 상대방이 당신을 적이라고 여기더라도 당신을 공격하기 어려워진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여기서 유대 관계의 형성을 이끄는 것이 ‘라포르’ 전략이다. 프랑스어로 ‘~을 다시 가져오다, 알리다’라는 뜻의 ‘rapporter’에서 유래한 '라포르'는 동의, 상호 이해, 공감 등을 특징으로 하는 조화로운 관계다. 긴장과 갈등 관계, 적대적인 상호 관계 속에서도 작동하는 ‘라포르’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것은 솔직함과 공감이다. 상대의 독립성과 선택권을 존중하는 ‘자율성’, 상대가 한 말을 되묻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확장하는 ‘복기’가 필요하다. 상대가 한 이야기에서 주요 요소를 끄집어낼 때 상대방은 더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향을 보이기에, 복기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책은 의사소통의 유형에 따라 사람을 4가지 동물 상징으로 나눴다. 솔직하고 숨김없이 이야기하지만 공격성과 가혹성이 엿보이는 ‘대립의 티라노사우르스’, 겸허와 인내로 패배·존중을 표현하지만 유약한 ‘순응의 쥐’, 책임감 있고 좋은 리더지만 독단적이거나 융통성 없게 행동하는 ‘통제의 사자’, 온정과 배려를 보이지만 과도한 친근감과 부적절한 친밀감을 드러내기도 하는 ‘협력의 원숭이’가 있다. 자신과 상대의 유형을 파악한다면 관계 형성과 대화는 더욱 윤택해질 수 있을 것이다. 1만6,000원.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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