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영화 ‘기생충’의 북미 개봉 당시 미국 매체 ‘벌처’가 “한국 영화가 지난 20년간 영화계에 끼친 엄청난 영향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봉준호 감독이 들려준 재치있는 대답이다. 칸영화제라는 ‘국제’ 영화제를 통해 세계적 감독으로 거듭난 봉 감독의 입담이 트위터를 타고 세계로 퍼지면서 #BongHive(봉하이브)’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하기도 했다. ‘벌집’을 의미하는 ‘하이브(Hive)’라는 단어를 붙인 ‘봉하이브’는 봉 감독에 대한 열성적 팬덤으로 해석된다.
놀라운 팬덤에 더해 ‘기생충’이 아카데미는 물론이고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골든글로브에서도 후보에 오르면서 봉준호 감독은 요즘 미국 영화계에서 화제의 인물로 부상했다. 내년 1월 5일(현지시간) 열리는 골든 글로브상에는 외국어영화상, 감독상, 각본상 등 3개 부문에, 내년 2월 9일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국제영화상과 주제가상 예비후보로 선정됐다. 최근 시카고비평가협회 등 미국 4대 비평가 협회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을 석권하면서 수상 기대감은 한층 고조됐다.
영화 작업을 할 때면 철저한 고독으로 스스로를 내몬다는 봉 감독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당시 자신이 “12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은 소심하고 어리석었던 ‘영화광’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광’이며서 한때 만화가를 꿈꾼 ‘만화광’이기도 했던 그는 지금도 영화 스토리보드를 직접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통스러운 작업을 통해 통해 탄생한 그의 작품들은 대사 하나, 세트 하나까지 치밀한 디테일을 자랑한다. 그에게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이 생긴 이유다.
실제 그가 연출한 7편의 장편들에는 그의 디테일함과 엉뚱함, 이상한 과감성이 오롯이 묻어난다. 대사와 장면은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으며, 봉준호식 유머 코드가 곳곳에 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파트 단지 내 강아지 실종사건을 그린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는 특유의 유머 코드가 호평을 받았으며,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살인의 추억(2003)’은 유머와 함께 그의 치밀함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봉 감독 최초의 천만 영화였던 ‘괴물’(2006)는 엉뚱함과 과감성이 따뜻한 가족애와 버무려진 ‘이상한 판타지 영화’로 완성됐다.
‘괴물’을 시작으로 봉 감독은 ‘마더’ ‘설국열차’ ‘옥자’ 등의 해외 개봉으로 이미 외국에서이름을 알려왔지만, ‘기생충’에 쏟아지는 관심은 이전과 차원이 다른 수준이다. 하지만 한 인터뷰에서“‘기생충’은 나의 7번째 영화고, 6번째 영화의 다음 작품이며, 8번째 영화 전 작품”이라고 한 말이 보여주듯이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을 때도 “또 다시 평소처럼 담담하게, 늘 하던 대로 창작의 길을 한 발 한 발 걷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과거에도 영화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영화를 잘 만들 생각밖에 없다는 의미다. 골든글로브와 오스카의 결정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이미 그는 한국이라는 ‘로컬’ 영화 감독에서 ‘글로벌’ 감독으로서 세계 영화의 중심에 서 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