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페이스북·구글·아마존·애플 등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한 반(反)독점 조사에 착수하며 본격적인 ‘IT 공룡 겨누기’에 나섰다. 그동안 ‘반보수주의’로 편향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을 받아온 IT 기업들이 유럽연합(EU)에 이어 미 규제 당국으로부터 대규모 벌금 등 실질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미 법무부는 성명을 내고 거대 IT 기업들에 대한 광범위한 반독점 조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법무부는 시장을 선도하는 온라인플랫폼들이 어떻게 시장 지배력을 확보했는지, 이들이 경쟁을 저해하고 혁신을 억압하거나 소비자에게 해를 끼치는 관행에 관여하지는 않았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성명에서 구체적인 기업명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조사 대상으로 ‘검색, 소셜미디어, 일부 온라인 소매 서비스’를 지목했다. 이는 사실상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을 가리킨 것이라고 NYT 등은 분석했다.
이번 발표는 지난달 2일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가 4대 IT 공룡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분담하기로 한 뒤 나온 것이다. 당시 두 기관이 업무 분장에 합의한 것은 전형적인 반독점 조사의 전조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시장에서는 당국이 IT 기업을 향해 반독점 규제의 칼을 뽑아든 것은 ‘독점’ 행위에 대한 규제당국의 판단 기준이 과거와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지난 1970년대 이후 미 법원과 규제당국은 기업 행위가 가격 인상 등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지는 것을 독점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현재 아마존은 더 싼 가격으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며 구글과 페이스북도 공짜로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반독점 조사를 받는 것은 IT 기업들의 막대한 시장지배력 때문에 법무부가 독점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했기 때문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거대 IT 기업에 대한 압박은 정치권에서도 거세게 일고 있다. 미 의회는 16~17일 4대 기업에 대한 청문회를 열어 반독점 문제를 집중 공격한 바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구글이 검색 결과에서 보수진영의 뉴스를 억압하고 있다고 공개 비난하는가 하면 아마존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고 공격하는 등 거대 IT 기업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다.
야권도 이들 기업에 우호적이지 않다. 이날 법무부가 IT 기업에 대한 반독점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하자 민주당 대권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아마존·페이스북·구글 같은 거대 기술 공룡들은 막대한 독점력을 행사하고 있다”면서 “나는 오랫동안 거대 기술기업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이번 반독점 조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IT 기업들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EU에서 거액의 ‘벌금폭탄’을 맞으며 규제를 받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제재에 소극적이던 미 당국까지 가세할 경우 부담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구글은 3월 EU로부터 온라인 검색 광고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며 과징금 14억9,000만유로(약 1조9,000억원)를 부과받았다. EU는 2017년과 2018년에도 구글에 총 67억유로 규모의 벌금을 부과했다. 아마존 역시 다른 판매업자들의 정보를 수집해 불공정 경쟁을 조장했다는 혐의로 EU의 조사를 받고 있다.
시장에서는 당국 조사가 본격화할 경우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MS는 10년간 반독점 소송에 시달리며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고 구글 등 후발주자의 추격을 허용했다.
이런 가운데 주요 IT 기업들은 이번주 줄줄이 올 2·4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24일 페이스북을 시작으로 아마존과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은 25일 실적을 공개한다. 26일에는 트위터의 실적 발표도 예고돼 있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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