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여름방학이 곧 시작된다. 방학은 사전에 따르면 수업을 쉬는 일, 또는 휴가를 뜻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방학이 따로 없는 듯 보인다. 아이들에게 유행하는 ‘텐투텐(ten to ten)’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방학이나 주말에 오전10시부터 오후10시까지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것을 말한다. 직장을 다니는 어른들에게 익숙한 ‘나인투식스(nine to six)’를 훨씬 뛰어넘는 아픈 표현이다.
올 초 우리 청소년들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참석해 우리의 교육 현실을 담은 대한민국 아동 보고서를 제출하고 발표했다. 한 참석학생의 전언에 따르면 오후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학습시간이 성인의 연평균 노동시간보다 길다고 얘기하자 유엔 유니세프 인사 중 한 명이 충격을 받았는지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시간에 쫓기며 사는 아이들에게 ‘승자는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패자는 시간에 끌려다니며 산다’는 조언을 어른들이 할 수 있을까.
어른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과로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들으며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저녁 있는 삶’은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월화수목금금금’이 직장인의 일상으로 치부되고 하루를 25시간인 것처럼 살아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 보내는 소박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뜻하는 덴마크와 노르웨이어 ‘휘게(hygge)’는 우리에게 생소한 먼 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청년실업과 저출산 고령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족한 소득을 현금으로 지원하거나 취약계층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정책에 치중해왔다. 아동수당과 실업급여·노인기초연금 등 현금복지나 보육, 어르신들 돌봄, 의료급여 등 현물복지가 대표적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과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여유를 갖고 자기계발이나 가족과 더불어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자 하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시간도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고려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모든 정책 수립의 기본 인프라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계다.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성별·연령·직업·계층에 따라 다르고 시간복지정책의 혜택을 받는 대상도 다양한 만큼 정확한 시간사용 통계가 필요하다. 유엔 등 국제기구와 우리나라의 여성정책 분야에서도 오래전부터 양성평등을 위한 무급노동의 경제적 가치평가를 위한 시간사용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통계청이 올해 다섯 번째 생활시간조사를 한다. 국민들이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알고 국민의 생활방식을 파악하고자 하는 조사로 5년마다 실시한다. 생활시간조사의 모집단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10세 이상 국민이며 1만2,435가구(약 3만명)를 표본으로 선정해 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한다. 계절요인과 시간활용을 분석하기 위해 3회에 걸쳐 조사를 실시하는데 1차 조사가 이달 19일부터 오는 28일까지 10일간 진행되며 2차는 9월, 3차는 12월에 실시된다.
이번 조사는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우리 국민들의 생활시간이 어떻게 달라질까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통계조사이기 때문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올해 조사는 여가시간 만족도와 시간별 정보통신기술(ICT) 기기 이용 여부가 조사항목으로 신설되고 세종시 표본이 추가된 것이 특징이다. 조사 결과는 일과 생활의 균형, 복지, 문화, 교통, 그리고 가사노동의 가치평가 등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와 학문연구 자료로 활용된다.
‘당신의 24시간, 대한민국의 하루가 됩니다.’ 올해 생활시간조사 캐치프레이즈다. 응답자의 24시간에 대한 성실하고 정확한 답변이 대한민국의 시간복지정책으로 이어져 우리 국민들의 행복한 생활시간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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