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기로에 선 한국 경제, 전(前) 한국경제학회장들에게 묻는다’라는 주제로 열린 특별좌담회에서는 “경제정책의 전면적인 궤도 수정이 화급하다”는 고언이 쏟아졌다. 3명의 전직 한국경제학회장들은 정부의 안이한 경제 인식과 대처부터 도마 위에 올렸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경기의 가파른 하강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음에도 시장친화적 정책을 외면하고 소득주도 성장 등 이미 실패로 드러난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는 쓴소리였다.
특히 우리 경제의 하향 추세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지적은 뼈아팠다. 정부의 잘못된 처방과 통화정책 늑장 대응 등이 맞물린 것이 원인으로 꼽혔다. 당장 정책 유턴을 단행해도 내년 하반기는 돼야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는 냉혹한 진단이 나왔을 정도다. 이번 좌담회에 참여한 재계의 한 임원은 “현실과 유리된 경제 운용이 미중 무역분쟁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평가가 뇌리에 꽂힌다”며 “정부가 경제하강기에 액셀을 밟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책 전환돼도 내년 후반기에나 개선 가능”=전임 학회장들은 한결같이 우리 경제의 부진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우리 경제의 1·4분기 성장률이 금융위기 이후 최저인 -0.4%(전 분기 대비)를 기록할 만큼 좋지 않지만 당분간 이 추세가 반전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짚었다. 김경수 성균관대 명예교수(48대 학회장)는 “글로벌 경제가 대침체에 빠졌던 지난 2011년부터 한국 경제는 2~3%대로 성장이 둔화되고 총요소생산성 증가율도 급격히 하락했는데 이 추세가 최근 더 강화되고 있다”며 “생산성을 높이지 않는다면 저성장 추세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구정모 CTBC 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47대 학회장)도 “반도체 호황에 따른 착시와 정치적 실험 및 역량 부족이 현재 역성장의 원인”이라며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46대 학회장)는 “정책 대전환이 있어도 내년 후반기나 돼야 (경제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며 “정책 대전환은 소득주도 성장 폐기와 시장 중심의 성장 위주 정책으로의 회귀를 뜻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분배정책도 중요하지만 우리 경제의 발전단계에서는 성장이 전제되지 않으면 분배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노동개혁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 교수는 “과격한 노동운동 때문에 고용주가 고용을 꺼릴 정도”라며 “정부가 진짜 필요한 노동개혁은 외면하면서 미봉책만 쓰다 보면 남미처럼 되지 말란 법도 없다”고 질타했다.
◇금리 인하 이미 늦어…무역분쟁만큼 해로운 경제정책=최근 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금리 인하에 대해서는 시기가 늦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경기 부진의 원인을 생산성 침체가 아닌 경기순환 과정 중에 일어나는 경기 하강으로 인식하는 것은 문제”라고 질타했다. 구 교수도 “지난해와 재작년 금리 인상 시점이 늦어지면서 반년 만에 금리를 인하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올 상반기에 금리 인하가 필요했고 하반기에도 추가 금리 인하가 예정돼야 했다”고 통화정책의 늑장 대응을 비판했다. 추가경정예산 효과에도 부정적이었다. 구 교수는 “(추경 효과는) 제한적이고 재정이 통제되지 않을 경우 국가채무의 과잉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로는 미중 무역갈등이 꼽혔다. 관세전쟁을 넘어 기술 패권전쟁으로 확전되면서 우리 기업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역전쟁으로 중국 경기 하강의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김 교수)” “최악의 경우 중국으로부터 제2의 사드 보복, 미국에서는 관세 부과로 양쪽으로부터 피해를 당할 것(구 교수)”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반면 조 교수는 정책 리스크가 더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대외적으로는 가장 큰 현안이지만 현실을 도외시한 경제 운용이 더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최근 정부 정책은 고용과 성장, 나아가 분배까지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고 혹평했다.
◇소득주도 성장으로는 제조업 르네상스 불가능=조 교수는 “법인세 인상과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이 제조업의 경쟁력을 해치는 상황에서 제조업 르네상스를 내건 것은 정부의 초조함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그는 이런 이율배반적 정책들이 시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것으로 봤다. 조 교수는 그러면서 “(기존 정책을 바로잡고) 정상적으로 경제만 운용해도 제조업 르네상스 없이 2030년 1인당 소득 4만달러 달성은 어렵지 않다”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정부 주도 고용’이라는 발상을 고쳐야 한다”고 꼬집었다. 구 교수는 “고용을 정부가 늘리려다 보니 법인세·소득세 등 세금 증가→가계·기업의 가처분소득 감소→고용 감소라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며 “고용의 주체는 기업이고 노동의 유연성이 커져야 고용도 늘어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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