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둥근 상이 떴습니다! - 新밥상공동체’ 편이 방송됐다.
1970-80년대에 많이 사용했던 양은상이 집밥의 아이콘으로, 최근에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오래된 양은상을 다시 보니, 밥상에서 꽤 긴 역사가 있음을 새삼 확인한다. 그 역사를 살펴보자면, 조선 시대 양반들은 혼자 먹는 소반을 밥상으로 받았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 중인을 비롯한 서민들의 집에서도 소반을 사용했다. 자연스레 소반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서열에 밀린 사람들은 둥글게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었는데 그것이 두레상이다. 빈부귀천 없는 평등을 상징했던 둥근 상이 우리 밥상 사이에서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가족이 아닌 공동체를 하나의 ‘식구’로 묶어준 ‘둥근 밥상‘을 소개한다. 함께 둘러앉아 먹는 두레 문화가 공동체 사이에서 어떻게 전해 내려오고 있는지, 그들이 나누는 정을 통해 둥근 밥상의 의미를 되새긴다.
▲ 옥계리 할매들의 장수밥상!
산으로 둘러싸인 고령의 산골 마을, 옥계리를 찾았다. 옥계리는 옥같이 맑은 물이 골짜기에 흐르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광 산업이 번성하던 시절이 지나가고 마을에는 혼자 남은 할머니들이 외롭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최석훈 씨가 마을로 이사 오면서 이곳 분위기가 바뀌었다. 최석훈 씨는 퇴직 후 대구에서 옥계리로 귀향해 동네 일꾼을 자처했다. 일꾼이 생기니 마을에서 같이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할머니들이 자연스레 자주 만나게 되었다. 2년 전에 사진전을 준비하며 밥해 먹던 것이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 잡아 한 달에 한 번 푸짐하게 옥계리 밥잔치를 벌였다. 그러면서 회관에 모여 밥을 해 먹고 노는 일이 잦아져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회관에 자주 모였다. 함께 하는 것만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는 옥계리 할머니들을 만나러 가본다.
산에서 자라는 약 나무가 할머니들의 요리 주재료이다. 꾸지뽕나무, 오갈피 등 각종 약 나무를 솥에 넣고 오랫동안 고면 약물이 완성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옥계리 할머니들의 장수비결! 물 대신 마시기도 하고, 밥을 짓거나 요리할 때 일반 물 대신 사용한다. 특히 동네잔치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술(식혜)도 약물로 만든다. 산골에서 많이 나는 나물 중 하나인 팥잎을 무와 함께 무친 팥잎무생채와 고사리를 더한 돼지고기볶음, 그리고 시래기튀김까지.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먹는, 보약이 따로 필요 없는 산골 마을의 장수밥상을 구경해보자.
▲ 삶의 현장 속에서 나누는 情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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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시장에서 상인들이 식사를 챙겨 먹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시장에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쟁반 배달이 발달했다. 무언가에 양은 쟁반을 올리기만 하면 그 자체가 바로 상이 된다. 유서 깊은 대구의 와룡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양은 쟁반에 둘러앉아 하나의 식구(食口)가 된 와룡시장 사람들은 청국장찌개와 다섯 가지 반찬으로 차린 한 끼를 나눠 먹는다. 바쁜 시장통에서 양은 쟁반에 모여앉아 밥을 먹으며 정을 나누는 밥상 공동체를 만나러 가본다.
복고 열풍에 힘입어 양은상의 매출도 이전보다 몇 배가 늘어났다고 한다. 그 덕에 양은 공장을 운영하는 노덕수 씨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꽃문양이 그려진 전사지를 양은상 위에 올려놓고 열을 가하면 양은상에 꽃이 피어난다. 이 양은공장은 노덕수 씨 뿐만 아니라 아내, 딸, 아들까지 모두 함께 일을 한다. 점심때가 되어 오랜 시간을 함께 일해 온 동료, 가족들과 직접 만든 양은상 위에서 밥을 먹는다. 오늘의 메뉴는 냉이를 넣고 끓인 봄기운 가득한 냉이김치찌개! 함께 고생도 나누고, 밥상도 나누는 또 다른 밥상 공동체인 이들을 만나 보자.
▲ 두레 정신을 이어오는 청년 농부들의 新 두레 밥상!
귀농 8년 차인 젊은 농부 이재원 씨는 밀양에서 삼채 농사를 짓는다. 밀양에서 농사를 지은 지 1여 년, 새로운 농산물 판로를 찾다 이재원 씨 아내 서효정 씨는 인터넷을 통한 꾸러미 판매를 생각하였다. 꾸러미 제작을 위해 밀양에서 함께 농사짓는 청년 농부를 불러 모았다. 이것을 계기로 밀양의 청년 농부들이 모여 자신들의 농산물로 요리를 만들어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노동이 필요한 일에 공동으로 작업하던 작업공동체를 의미하는, 옛 공동체 조직인 ‘두레’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밀양의 청년 농부들을 만나러 가보자.
삼채농부 이재원 씨는 단맛, 쓴맛, 매운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삼채를 이용해 다양한 요리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잡내 없는 닭국은 그가 즐겨 만드는 요리 중 하나이다. 1년 전부터 장어 양식장을 하고 있는 임중률 씨의 장어와 삼채가 만나면 또 하나의 요리가 완성된다. 감자 농사를 짓는 이건희 씨는 서효정 씨에게 감자치즈말이를 배우고, 비트 농사를 하는 이동균 씨는 할머니를 위해 개발했다는 비트죽을 만든다. 이렇게 손수 재배한 농산물로 만든 요리들이 둥근 밥상에 차려진다. 함께 모이면 더 힘이 나는 청년 농부들의 밥상을 맛보러 가보자.
/김호경기자 khk01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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