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에 대한 지원이 연구의 자유를 주는 ‘선물’이 돼야 합니다. 지원이 뻔한 결과를 요구하는 ‘용역’이 돼서는 우리나라 과학 연구에 미래가 없습니다.”
정택동(50·사진)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은 연구는 자유가 핵심이라고 단언한다. 최근 정 융기원장은 경기 수원 광교 본원에서 열린 ‘융합기술과 스타트업’ 강연 후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과학기술 예산이 연구 결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원받은 연구자가 최선을 다해 도전했는지 연구 과정에 대해서만 책임을 져야지 연구 결과가 기대만큼 나왔는지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는 문화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과학기술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는 “연구-개발-산업 3개의 축 사이에 적절한 지원과 투자가 이뤄져야 과학기술이 발전한다”며 “과학기술을 토대로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이 조성되면 자연스레 많은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투자·지원 문제가 아직 성공 경험이 많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AT&T·듀폰·코닥 등의 글로벌 기업들은 직접 개발은 물론 기초연구 분야에까지 손을 댔는데 이는 연구로 돈을 벌어본 경험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 원장은 “우리는 성공 경험이 없어 정부는 물론 대기업들도 기초연구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라며 “그나마 공공 투자가 활성화해야 민간 투자도 따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85조원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국가 전체 연구비 규모를 감안할 때 과학기술계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정 원장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우선 철저한 원인 분석을 한 후 예산 집행자들과 과학계가 충분히 논의하는 것이 순리”라며 “무작정 선택과 집중을 강요한다면 한 방향으로만 갈 수 없는 기초과학의 등방성(等方性)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 예산이라는 점에서 연구자의 소통능력도 강조했다. 그는 “혈세가 지원되는 만큼 과학기술계가 납세자인 국민에게 성실히 설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화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정 원장은 연구·개발·비즈니스 영역을 섭렵한 과학자다.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 연구원을 지냈고 지난 2014년 대한화학회 학술대상을 수상한 그는 서울대에 부임하기 전 반도체 공정 재료와 혈당 센서 관련 스타트업 2곳을 세우고 쓰라린 실패도 맛본 창업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강연에서 “연구에서 개발까지는 기나긴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 사회는 개발을 위한 노력, 성과를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창업지원 조직보다 직접 창업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과 지원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초고령·양극화 등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을 정 원장은 ‘누울 자리’에 비유했다. 그는 “마치 화전(火田)처럼 불을 질러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야 일자리·복지 같은 문제를 풀 누울 자리가 마련된다”며 “결국 연구-개발-산업의 고리가 제대로 돌아가야 누울 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4월 국내 첫 관학협력 기관인 융기원의 수장을 맡았다. 2008년 경기도와 서울대가 공동 설립해 광교테크노밸리에 둥지를 튼 융기원은 9월17일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으로 편입됐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사진제공=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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