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정여울의 언어정담] 그렁그렁, 초롱초롱 그리고 왈칵

작가

호기심·관심 넘치는 '초롱초롱'

뜨거운 감동과 슬픔 '그렁그렁'

눈은 인간 영혼의 메신저 역할

감정 정화시키는 전환점 되기도





나에게 인간의 감각기관 중 가장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은 ‘눈’이다. 눈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혼자 다해낼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재능을 뽐낸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도 잇듯이 인간의 눈은 보는 것 말고도 많은 것을 스스로 드러내 준다. 눈은 때로는 눈물로 촉촉해지고, 신기한 것을 보면 초롱초롱해지고, 아예 감고 있을 때마저도 무언가를 말하는 듯한 신비로운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눈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주는 창 역할을 하고, 눈물이 맺히거나 흘러내릴 때는 그 투명한 눈물의 통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은 세상을 향한 마르지 않는 호기심과 존재를 향한 깊은 관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눈은 단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임’으로써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는 영혼의 메신저다. 그렁그렁 눈물이 고일 때, 초롱초롱 눈이 빛날 때, 그리고 마침내 왈칵 눈물이 쏟아질 때. 묵은 감정은 깨끗이 정화되고 삶은 눈부신 전환점을 맞는다.

우리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힐 때는 꼭 엄청나게 슬플 때만은 아니다. 감동적인 영화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볼 때, 어떤 대사가 나올지 뻔히 알면서도 그 순간이 찬란하게 빛나는 단 한 번뿐인 시간처럼 느껴진다. 영화 ‘노팅힐’을 다시 보면서 어김없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장면이 있다. 애나(줄리아 로버츠)는 자신이 유명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는 저 사람 때문에 분명히 또 상처받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사랑을 거부하는 윌리엄(휴 그랜트)에게 고백한다. 자신은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 온 것이 아니라 그저 한 남자의 사랑을 꿈꾸는 평범한 여자로서 여기 찾아온 것이라고. 남자가 운영하는 서점에 조심조심 들어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샤갈의 그림을 선물하며 애나는 이렇게 말한다. 잊지 말아달라고. 나는 그저 한 남자 앞에서 자신을 사랑해줄 것을 부탁하고 있는 여자일 뿐이라고.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고, 콧날이 시큰해진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또한 아무리 여러 번 봐도 시들지 않는 감동을 선사한다. 사랑하는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를 잃고 혼자 남겨진 히로코. 그 사람이 죽은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의 중학교 시절 주소로 편지를 써 보내는 그녀의 ‘비합리적인 몸짓’ 때문에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기적은 시작된다. 정말 거짓말처럼 후지이 이츠키로부터 답장이 왔고, 그때부터 죽은 애인과 동명이인인 이츠키와의 펜팔이 시작된다. 히로코가 약혼자가 조난당한 설산에서 고인과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가 죽은 지 2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아주 힘겹게 작별인사를 시작하는 히로코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에게 따스한 안부를 묻는 것처럼 간절하게 눈 쌓인 겨울산을 향해 외친다. “잘 있나요? 저는 잘 있습니다!” 김소월의 ‘초혼’처럼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을 부르고 또 부르다가 목이 터져 죽어버릴 것만 같은 애절함으로 히로코는 외친다. 잘 있냐고. 나도 잘 있다고. 이 장면의 뜨거운 감동은 ‘그렁그렁’보다는 ‘왈칵’이라는 의태어와 더 잘 어울린다.

천재소녀 메리의 양육권을 놓고 외삼촌과 외할머니가 다툼을 벌이는 영화 ‘어메이징 메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그야말로 ‘철철’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세계적인 수학천재였던 엄마가 자살한 뒤 외삼촌의 손에 자란 메리는 학교도 가기 싫고, 친구도 사귀기 싫고, 오직 외삼촌과 애꾸눈 고양이, 책만 사랑하는 외로운 아이였다. 외할머니는 어떻게든 메리를 최고의 영재로 키우고 싶어하지만, 외삼촌은 메리의 엄마가 자살한 이유가 바로 그 천재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지독한 스파르타식 훈육이었음을 기억한다. 차마 그런 무시무시한 외할머니 손에 메리를 맡길 수 없는 외삼촌이 궁여지책으로 위탁가정에 메리를 맡기자, 메리는 울며불며 외삼촌에게 매달린다. 외삼촌은 자신의 가난과 불안정한 생활이 메리에게 악영향을 끼칠까 고민했지만, 정작 메리에게 필요한 것은 값비싼 노트북이나 피아노가 아니라 세상에 없는 엄마이자 아빠이자 친구의 역할을 해주었던 외삼촌의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장면에서 왈칵 눈물이 솟았다. 이렇듯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고 듣고 보며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는 순간. 바로 그런 순간이 ‘우리의 눈이 최고로 행복해하는 시간’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