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에너정책합리화를추구하는교수협의회(이하 에교협)’ 창립 기념토론회에서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들어 놓고, 정작 전기요금 인상은 미미할 것으로 안심시키는 모순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전의 경영 환경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수립한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통해 2029년까지 38.3GW 규모를 짓기로 했던 제7차 계획 목표를 2031년 20.4GW로 대폭 축소했다. 대신 32.9GW였던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설비 계획을 58.5GW로 늘려 잡았다. 에교협은 이 같은 탈원전 정책을 합리적으로 바로잡고자 하는 원자력·화학 등 이공계, 인문·사회계 교수 210명으로 구성됐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성풍현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3인이 공동 대표를 맡았다.
에교협 경제사회위원장을 맡은 손 교수는 이날 열린 토론회에서 이 같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 및 발전 자회사의 부채가 크게 늘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8월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2017년 53조7,000억원인 한전의 부채는 2021년 66조8,000억원으로 13조1,000억원 증가한다. 한국수력원자력 등 등 발전 자회사까지 포함하면 부채는 138조8,000억원으로 2017년(112조원) 대비 26조8,000억원이 늘어난다. 탈원전 정책의 영향권 밖에 있는 2016년(104조3,000억원)과 비교하면 34조5,000억원 증가한 수치다.
원전의 비중을 줄이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부채가 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란 게 손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지난해 한전의 영업이익이 7조원 줄어든 이유는 민간 발전사업자에 대한 전력구입비 증가, 발전 연료비 증가, 설비의 감가상각비 등이다”고 지적하며 “현재 원전 24기 중 11기가 중단된 상황이 길게 지속하면 약 2조원의 정도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한전의 경영 악화도 문제지만 전력수요를 낮게 전망한 제8차 수급계획이 에너지 안보를 헤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이 교수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2017년 최대 전력수요를 85.2GW로 전망했지만 지난 2월 6일 이를 초과한 88.2GW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꼬집었다.
지난 30년간 국내 전력수급 구조를 되짚어보면 설비부족이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토론에 나선 황주호 경희대 부총장은 “지난 30년을 보면 전력예비율이 최대치를 기록한 후 8년이 지나면 수급위기가 찾아왔고, 이로부터 3년이 지나면 다시 안정단계에 진입했다”며 같은 일이 반복돼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제8차 수급계획이 법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에교협 법사행정위원장을 맡은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법률을 통해 정책을 변경한 독일과 달리 행정입법을 통해 정책을 강행했다”며 “탈원전 정책을 담은 제8차 수급계획도 (원전 확대를 넣은) 상위계획인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위반했는지 여부도 향후 탈원전 정책 취소소송에서 법적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