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9시40분께 서울시에서 기자의 전화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오전10시30분에 ‘최근 현안 관련해 차담회’를 하겠다는 내용이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지난 2014년 선거캠프에서 발생한 일에 대한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관계자는 이와 함께 “사건 발생과정부터 처리, 피해자 보호조치 등에 관해 조사하고 (오는 지방선거에서의) 재발방지책도 만들겠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간담회가 잡힌 이유에 대해서는 “기자들의 문의가 많아 소통을 위한 자리를 한꺼번에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가 관가로 확산되면서 사실상 첫 타깃이 된 서울시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서울시는 6월 지방선거를 100여일 앞두고 박원순 시장의 3선 선거전략에 차질이 생길까 긴장하는 모습이다. 진상규명위를 즉각 꾸리겠다는 대책이 나온 이유다.
지난달 28일 여성 작가 A씨는 2014년 박원순 선거캠프에서 활동하던 중 다른 자원봉사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A씨는 “캠프 측에서 선거 백서를 만들어 캠프에서 활동한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든 보호할 방안을 강구한다고 약속했지만 이 백서는 4년이 지나도록 만들어지지도, 제공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이날 “당시 백서를 발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이번 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라 백서든, 어떤 형태로든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사건이 확산되면서 박 시장도 직접 나섰다. 박 시장은 1일 저녁 페이스북을 통해 “(선거캠프 당시) 그 사실을 몰랐던 것도 내 불찰”이라고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다.
이미 서울시는 ‘미투’로 소란스러운 상황이다. 시 내부 게시판에는 “나도 성추행을 당했다”는 취지의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박진형 서울시의회 의원에 따르면 지난달 7일 ‘우리도 미투할까요’라는 글이 처음 올라온 이래 지난달 말까지 314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렸다.
‘식당에서 내 허벅지에 손을 올린 채 아내와의 성생활에 관한 이야기까지 꺼냈다’ ‘5급이 7급 신규 직원을 노래방에 데려가 허벅지를 만지고 브래지어 끈을 튕겼다’ 등의 폭로다. 다만 이들 글은 대부분 익명이고 가해자나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경우로 전해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 내부 제보들에 대해 “진상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후배 문인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고은 시인 관련 시설은 결국 서울시에서 퇴출됐다. 서울시는 고은 시인을 조명하는 공간인 서울도서관 ‘만인의 방’에 지난달 28일 가림막을 치는 등 철거 수순에 들어갔다.
그동안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비롯해 여성안전 환경조성 등 여성친화 정책을 브랜드로 삼아왔다는 점에서 박 시장에게 억울하다는 것이 서울시 해명이다. 한 사회학 전문가는 “공직사회도 성희롱 등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번 서울시의 ‘미투’ 사례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며 철저한 대비를 주문했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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