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가상화폐 가격이 널뛰기를 하면서 거품 논란이 커지는데다 국내외 거래소들이 해킹·집단소송 등 각종 리스크에 노출되면서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을 둘러싼 혼란이 커지고 있다. 가상화폐 광풍이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버블의 재연인지 아니면 기존의 금융 시스템을 갈아엎는 모멘텀인지에 대한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22일 국내 1위 가상화폐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1비트코인의 거래가격은 전날 기준 사상 최대인 900만원선을 돌파하며 1,000만원이라는 꿈의 숫자를 눈앞에 두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10배가량 뛴 셈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상승 국면이지만 등락폭이 워낙 커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리스크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현재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는 비트코인·이더리움을 포함해 10여 종류의 가상화폐가 거래되고 있는데 일부 화폐는 며칠 만에 가격이 반 토막 날 정도로 널뛰기가 심하다.
국내 가상화폐 투자자가 100만 명을 넘을 정도로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유사수신행위나 돈세탁 등 불법거래로 인한 소비자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실질 주식 투자자 494만명의 5분의1에 불과하지만 이미 가상화폐 거래규모는 코스닥시장 하루 거래대금을 넘어섰다.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하다 보니 가상화폐를 털어가는 해킹공격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가상화폐의 하나인 테더(tether)가 3,000만 달러 넘게 해커들에게 도난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가상화폐 정보업체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신생 가상화폐 업체인 테더는 전날 외부 공격자들에 의해 3,095만 달러(약 338억원) 상당의 토큰을 분실했다고 주장했다.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해킹도 잇따르고 있어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홍콩의 비트코인 거래소 ‘비트파이넥스’는 지난해 해킹 공격을 받고 6,000만 달러어치의 가상화폐를 도난당해 파산했다. 유럽에서는 2015년 ‘비트스탬프’가 해킹으로 500만 달러어치 가상화폐를 도난당했다. 국내에서도 올해 야피존·빗썸·코인이즈 등에서 해킹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특히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는 수수료 수익만 챙기고 거래 안정성을 위한 투자를 등한시하다 보니 서버 다운이나 해킹 등 각종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어 투자자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은 해킹과 서버 다운을 모두 겪었다. 빗썸은 지난 12일 거래량 폭증으로 서버장애가 발생해 1시간 반가량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가격 하락 시점에 매도 주문을 하지 못해 손해를 입었다며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6월에는 빗썸 고객 3만명의 e메일과 휴대폰 번호 등 개인정보가 해킹으로 유출된 사건이 벌어졌다.
가상화폐가 자금세탁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ABC방송은 이란 국적 해커가 미국 케이블 채널인 HBO를 해킹한 혐의로 미 연방검찰에 기소됐다고 보도했다. 이 해커는 인기 시리즈인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대본과 신작인 ‘볼러스(Ballers)’ 등의 영상을 방영 전에 빼낸 뒤 사전유출을 막으려면 600만달러를 비트코인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내외 유명인사들은 가상화폐 열풍이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과 닮았다며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최근 사임한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9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상화폐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버블”이라며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것도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가상화폐를 공식적인 화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상화폐가 공식 화폐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일축한 것이다.
가치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도 비트코인에 투자한 지 11개월 만에 가격이 8배가 오른 8,000달러를 돌파하자 “비트코인은 진정한 거품 상태”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지난달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IMF 연례총회에서 “우리는 엄청난 붕괴를 목격하기 직전이라고 생각한다”며 중앙은행과 금융 당국이 가상화폐에 대해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이웃 나라인 중국이 비트코인 거래소를 폐쇄하자 중국의 가상화폐 거래소가 국내로 잇따라 이전하면서 국내 투자자들은 버블인지, 투자수단인지도 모를 가상화폐 투자에 내몰리는 형국이다.
이 같은 경고에도 비트코인 등을 위시한 가상화폐는 식을 줄 모르는 투자 열기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전 세계 금융권이 가상화폐를 새로운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주목하면서 버블론에 대한 반론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9월 “비트코인은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제롬 파월 차기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조금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비트코인 상품을 출시하는 등 금융 선진국들이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의 하나로 취급하면서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박녹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비트코인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잠재가치가 높은 화폐”라며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다음달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하기로 하는 등 신규 투자자들이 유입될 수 있는 유인은 많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상화폐 투자 가열 현상을 지켜보는 금융 당국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가상화폐에 대한 논쟁거리만 보고 규제를 앞세우면 핀테크 등 새로운 산업이 아예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김기혁·연유진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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