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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의 예(藝)-<21>박노수 '류하(柳下)'] 청량한 쪽빛 아래 홀로 선 사내...기다림은 기대감이다

살짝 돌린 옆 얼굴... 눈빛엔 아련함 가득

시선의 끝에서 새어나오는 노란빛 탓에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희망의 기운 담겨

'그림 곧잘 그리던' 한학자집 아이 박노수

18살에 청전 이상범 화숙서 처음 붓 들어

문인화풍 남화와 북화의 색채 절묘히 절충

동양화로 현대미술사 열어젖힌 첫 세대

남정 박노수 ‘류하(柳下)’ 화선지에 그린 수묵담채화, 1980년작, 97x179cm /사진제공=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




눈이 부시게 푸르른 자연 속에 한 남자가 동그마니 섰다. 그를 둘러싼 쪽빛(藍色)이 산이어도 좋겠고, 물이어도 좋겠지만 실상은 가지 늘어뜨린 버드나무다. 한국 현대 동양화단의 대표작가 남정(藍丁) 박노수(1927~2013)가 1980년에 그린 ‘류하(柳下)’, 즉 ‘버드나무 아래서’라는 작품이다. 짙은 파란색 덕분에 눈으로 보기만 해도 온몸이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더운 날씨 탓인지 마치 공기청정 기능을 탑재한 에어컨의 찬바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 자연을 그린 것이건만 기계 바람에 빗댈 정도로, 요즘은 어디를 가야 저토록 맑고 청량한 푸른색을 볼 수 있을지 속상한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자연 안에 홀로 선 사내는 먼 곳을 바라본다. 살짝 돌린 옆 얼굴과 아련한 눈빛이 그렇다. 뭔가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조금 처진 사내의 어깨가, 거대한 자연에 비해 왜소한 사람의 몸뚱이가 처연한 기운을 풍기기도 하지만 기다리는 그 누군가가 있으니 홀로 서 있어도 아주 외로워 보이지만은 않는다. 기다림은 곧 기대감이다. 푸른색이 주는 특유의 희망적 분위기에다 사내의 시선 닿는 곳쯤에서 새어나오는 노란 빛이 그런 분위기를 더해준다.

충남 연기군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박노수는 5살부터 할머니께 천자문을 배우고 아버지로부터 서예를 익혔다. 동네에서 그림 곧잘 그리는 아이로 알려진 것도 거의 그 무렵이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공중폭격이 심했던 동경으로 미술 유학을 떠나지 않기로 한 것은 돌이켜보건대 탁월한 결정이었다. 대신 열여덟 살 되던 해에 상경해 서울 누하동에 자리잡은 청전 이상범(1897~1972)의 화숙에서 처음 붓을 들었다.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스승은 약관의 박노수에게 “그림은 여운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1년 이상 그림 공부를 하고서는 194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1과(동양화과)에 입학했다. 해방 이후 설립된 국내 미술대학에서 체계적으로 미술이론과 실기를 배운 첫 세대가 바로 그다. 그러나 졸업장 받기 몇 달 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밥을 굶고 시체를 넘어 도착한 부산에서 종군화가단으로 활동했다. 어렵사리 전쟁통에 졸업장을 받기는 했으나 졸업작품전에 출품해 최고상인 문교부장관상까지 받은 그림은 중간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돌려받지 못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시절이었지만 재능은 어디서나 빛났다.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에 처음 참여해 두각을 나타냈고 1955년에는 수묵채색의 인물화 ‘선소운(仙簫韻)’으로 최고 영예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신선이 듣는 퉁소 소리라는 뜻의 ‘선소운’이란 운치있는 제목 아래 화가는 검은 한복차림의 여성을 그렸다. 먹이 아닌 아이보리블랙의 검은색으로 붓자국 없이 평평하게 색을 칠한 것이나 하얀색으로 옷주름을 표현한 것은 파격적이었다. 신선의 피리소리가 들릴 듯한 격조와 세련미를 동시에 품은 이 그림은 오늘날 청와대에 해당하는 경무대에 들어갔다가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박노수의 1955년작 ‘선소운’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젊은 시절 박노수는 한동안 여인과 소년 등 인물화에 몰두했다. 한국의 산천을 계절별로 다채롭게 그려내던 스승 청전의 그늘이 신경 쓰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그가 즐겨 그린 소년은 어린 남자라기 보다는 절개있는 선비 같고, 고고한 이상을 가진 젊은이의 모습으로 작가 자신을 투사하곤 했다. 지난 2010년 덕수궁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박노수, 봄을 기다리는 소년’을 기획한 박수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박노수의 작품 소재는 말, 노루, 소년, 선비, 달, 나무, 산, 강, 바위 등 지극히 한정적이며 그 안에 초연히 인물 하나가 등장한다”면서 “소년, 고사(高士)로 표현되는 인물은 봄을 기다리는 외로움, 쓸쓸함을 표상하는 소재인 동시에 그 시선은 관객을 화면 속 너머의 무한한 공간으로 이끈다”고 설명했다. 세속을 떠나 자연에 안기고자 했던 작가의 태도는 그가 1992년의 수필에서 “왠지 나는 자연이 좋고 그 속에서 안온함을 느낀다.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생이어서 그런 것일까?”라고 적은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허연 옷을 입은 버드나무 아래의 남자는 하얀색 옷을 좋아하면서, 혼자 있는 작업실일지라도 점퍼를 목 끝까지 올려 잠근 채 그림을 그리던 화가와 많이 닮았다.

박노수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겸재의 진경산수 이후 조선 화단을 지배하던 전통 한국화를 현대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제강점기에 드리운 왜색을 극복하는 동시에 고유한 한국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동양화에는 남화(南畵)와 북화(北畵)가 있다. 대체적으로 남화는 묵과 선 중심의 담채가 특징이고 북화는 채색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풀어 설명한 적도 있는 작가는 격조있는 문인화풍의 남화와 감각적인 색채의 북화를 절충해 절제된 고유의 화풍을 이뤄냈다. 북화적인 스케일과 남화적인 정신세계가 조화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동양화로 현대미술사를 열어젖힌 첫 세대 주요 작가로 그가 손꼽히는 이유다.



박노수 1970년작 ‘숭산은천’ /사진제공=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


그런 박노수는 1970년대부터 집중적으로 산수풍경화를 파고든다. 먹그림을 먼저 배웠지만 남정의 색감은 탁월했다. 특히 개나리 같은 노랑과 단풍 닮은 주황색의 사용은 ‘예쁘장하다’ 소리를 들을 정도다. 하지만 색에 취해버린다면 그의 그림 맛은 반밖에 못 보는 셈이다. 종잇장에 착착 달라붙은 듯한 선(線)의 맛이 제맛이다. 그때그때 먹을 갈아 세필부터 갈필까지 휘두른 그 붓질에서 작가의 호흡이 느껴진다. 선으로 잡은 옷주름에서 그림 속 인물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군청색’으로 불리는, 고상한 짙은 파란색도 이 무렵 등장했고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절정을 이룬다.

사실 박노수는 남정(藍丁)이라는 그의 호(號)에서부터 짙푸른 쪽빛을 자랑한다. 그가 20대 후반이던 시절 서예가 소전 손재형(1903~1981)이 이름을 지어주며 ‘푸른 빛’과 ‘변치 않는 마음’, ‘가람’(불교 사원)이라는 뜻을 되새겨줬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고사를 의식했던 것인지 손재형이 “청전(박노수의 스승 이상범의 호)이 싫어하겠구만”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화가 자신은 “군청은 한눈에 척 보면 들어오는 색”이라서 좋아하면서도 “푸른색이 좀처럼 주변과 어울리기 어려운 색”이라 더 파고들었다.

박노수 ‘고사’, 연도미상작. /사진제공=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


이화여대와 서울대 교수로,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약하던 작가는 2003년 병석에 든 이후 고심 끝에 40여 년 산 자신의 종로구 옥인동 집과 그림 500여점을 포함해 고가구와 수석·석물 등 1,000여점을 종로구에 기증했다. 2011년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을 조성하기로 협약식을 맺은 후 병색이 악화하는 바람에 일정을 서둘렀음에도 2013년 9월 개관을 채 보지 못하고 화가는 세상을 떠났다. 경복궁 옆 서촌 안쪽에 자리잡은 미술관은 1937년경 지어진 프랑스식 내부와 일본식 건축이 결합된 절충식 주택으로 박노수는 1973년부터 이곳에 살았다. 절충식이라지만 온돌이 깔린 한식 생활이 주를 이뤘고,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정원이 백미다. 생전의 화가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 2시간씩 정원 가꾸기에 공을 들였고 새하얀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듯 벽오동·백모란·자색모란·백일홍을 심고 기암괴석과 석물을 배치했다. 그 안에서 만나는 남정의 그림들은 오래된 홍송 나무바닥의 향기와 어우러져 진한 감동을 전한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박노수 1960년작 ‘하산요수’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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