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A사는 최근 가볍고 빨리 펴지는 신개념 보조낙하산을 개발해 상당한 수익을 기대했다. 하지만 핵심기술이 유출돼 영업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경찰 조사에서 지난 2015년 회사를 퇴사한 부사장과 공장장이 보조낙하산의 제품 도면과 설계사양서 등을 말레이시아로 빼돌려 시제품을 제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 블록 단위로 제작된 선박의 선체를 조립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B사는 최근 중국의 한 업체가 같은 기술로 선박을 조립하면서 매출에 차질이 생겼다. 기술유출을 의심한 B사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기술을 유출한 사람은 회사의 전 부서장으로 밝혀졌다. 그는 2014년 9월 퇴사하면서 기술을 빼낸 뒤 중국 업체 기술고문으로 옮겨갔다.
핵심부서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갑자기 그만둔 뒤 경쟁업체에서 유사한 제품이 나오면 기술유출을 의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업 고위임원과 기술자 등 내부자에 의한 산업기술 유출 사례가 크게 늘고 있어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거나 보유한 기업의 주의가 요구된다.
18일 경찰청 산업기술유출수사지원센터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산업기술 유출 적발 건수는 총 560건이며 기술유출 혐의로 검거된 사람은 1,668명에 이른다. 경찰 조사에서 산업기술 유출 사범은 대부분 기업 내부 임직원이었다. 이들은 회사 보수와 처우 등에 불만을 품고 다른 업체로 이직할 때 핵심기술을 함께 가져가면서 높은 연봉과 직급을 보장받기도 한다. 경쟁업체로부터 대가를 받고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기술을 넘기는 경우도 많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호돼야 할 기술로 지정된 국내 산업기술은 총 61개다. 전기·전자기술 11개, 로봇 9개, 자동차 8개, 정보통신 8개, 조선 7개, 철강 6개, 원자력 5개 등이다. 문제는 이들 기술이 중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어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원인으로 꼽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핵심기술을 개발·보유한 기업은 기술유출 징후를 빨리 인지해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 관계자는 “대표적 기술유출 징후는 다른 회사에서 유사제품을 생산하거나 핵심인력이 돌연 사직하는 경우 등”이라며 “다른 회사와 공동연구·합작투자 등 의향서를 체결하고 본계약이 지연되면 역시 기술유출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기술 유출 정황이 의심되거나 포착되면 관계기관에 신속히 알려 피해 확산을 막아야 한다.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관계자는 “산업기술 유출을 수사하는 경찰청과 국가정보원에 빨리 신고해 2차·3차 피해를 막는 게 중요하다”면서 “아울러 협회에 연락해 기술유출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를 진행하고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청에서 맞춤형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산업기술 유출 예방법을 익혀놓는 것도 중요하다. 경찰청과 특허청·한국기술보호협회는 기술유출 예방법으로 △일반 정보와 영업비밀 구분 및 표시 △영업비밀 접근 가능자에게 비밀보호 의무 부과 △영업비밀 개발·보관장소 별도 지정 및 관리 △분쟁 대비 영업비밀 증거 확보 등을 제시했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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