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집 화장실도 이렇게 쓰냐고 묻고 싶네요.”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여성화장실을 찾은 대학생 이호정(25)씨는 화장실 첫 번째 칸을 열어 보고 경악했다. 쪼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는 재래식 대변기 양옆으로 소변과 물이 섞여 바닥이 흥건했다. 옆 칸으로 옮겼지만 양변기에는 용변과 함께 휴지 등이 가득 차 있었다. 볼일이 급했던 이씨는 어쩔 수 없이 첫 번째 칸에 들어가 용무를 해결했지만 찝찝한 기분을 지울 길이 없었다.
시청·서울·광화문·신촌역 등 서울 시내 주요 지하철역에 자리한 화장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역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는 원옥희(55)씨는 용변이 묻은 휴지로 가득 찬 비닐봉지를 열어 보이며 “바닥에 그냥 버리고 간 것을 주운 것만 이 정도”라며 “스타킹과 생리대를 펼쳐 놓은 채 버리고 갈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을 때 물을 튀게 해 바닥까지 미끄럽게 만드는 경우도 민폐 사례로 꼽힌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화장실 관리인은 “구두를 신은 여성이 화장실로 들어오다가 바닥의 물 때문에 미끄러질 뻔한 것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세면대를 험하게 쓴 사람이 화장실에서 미끄러지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중화장실에 비치돼 있는 휴지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거나 집으로 가져가는 ‘얌체족’도 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휴지를 너무 많이 사용해 화장실 벽면에 휴지를 적당히 사용해달라는 문구를 붙여놓기도 했다.
우리나라 공중화장실 시설은 선진국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의식은 여전히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가 지난해 9월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화장실 이용 시 가장 불편했던 점 1위가 ‘용변 후 물 안 내림(30.9%)’이었고 ‘시설의 노후 및 불량(23.1%)’ ‘화장실 악취(18.9%)’ 등이 뒤를 이었다. 응답자 가운데 72.7%는 화장실 이용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시민의식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대표는 “화장실을 깨끗하게 쓰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이면서 곧 내가 받을 배려이기도 하다”며 “화장실을 깨끗하게 쓰는 것은 곧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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