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비용과 관련한 한미의 공방이 제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4월30일(현지시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 사드 비용 재협상을 요구했다고 분명히 밝히면서 차기 정부는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뜻은 명확…김관진은 동문서답=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 사드 배치 비용 10억달러를 한국이 부담하라고 통보했다”고 밝혔을 때 한국 외교·안보 당국은 반신반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뒤를 재지 않고 돌발적으로 이 같은 발언을 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외교가에서 나왔다.
그 이후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0일 맥매스터 보좌관과 전화 통화를 했다며 그 내용을 언론에 발표했다. “사드 배치 비용부담과 관련, 한미 간 이미 합의된 내용을 재확인했다” “맥매스터 보좌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비용) 발언은 동맹국들의 비용 분담에 대한 미국 국민의 여망을 염두에 두고 일반적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맥매스터 보좌관은 김 실장의 언론 발표가 나온 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이를 정면 반박했다. 그는 30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에 출연해 진행자가 ‘당신이 한국 측에 기존 협정(한국 부지제공, 미군 전개 및 운영유지비 부담)을 지킬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곧장 “내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것이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 얘기가 아니었다(that’s not what it was)”고 부인했다.
그는 이어 “내가 한국의 카운터파트에 말한 것은 ‘어떤 재협상이 있기 전까지는 그 기존협정은 유효하다(until any renegotiation, that the deal is in place)’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맥매스터 보좌관의 이 같은 언급에 대해 김 실장은 1일 “한미 간의 기존합의가 유효하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으로 본다”고 동문서답식 해석을 내놓았다. 상대방은 재협상 필요성을 얘기했다고 하는데 김 실장은 이를 두고 기존 합의가 유효함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재협상 요구 대응 불가피…통상 문제 연계될 수도=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백악관의 안보 수장이 사드 비용을 받아야겠다고 나섬에 따라 차기 정부는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어떤 식으로든 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방부 측은 “사드 비용은 재협상 사안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지만 쉽게 재협상을 거부할 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를 결정하며 “방위를 위한 주권적 결정”이라고 전제했다. 한국이 스스로 원해서 배치를 결정한 형식이어서 미국의 관련 비용 청구를 100%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만약 재협상을 거부할 경우 미국은 통상 문제, 한미 방위비 분담 문제 등을 연계해 한국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재협상 의지가 워낙 확고하다”면서 “만약 새 정부가 재협상을 거부할 경우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겠다고 강경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 요구대로 사드 비용 10억달러를 부담하려면 국회의 비준 동의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를 우회할 방법은 있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을 사드 비용만큼 올려주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이른바 ‘안보 비용’을 추가로 받을 다양한 방법을 가진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 따라 차기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대미외교라는 거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정 실장은 “새 대통령은 곧바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임명하고 미국에 특사를 파견해 정상회담 조기 개최를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새 정부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사드 합의문이 공개돼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김 실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 한민구 국방부 장관 등 사드 배치 결정 관련 책임자들의 진솔한 해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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