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검찰 조사 협조 여부를 놓고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16일 박 대통령이 “부산 엘시티 비리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갑자기 지시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오는 18일까지는 조사를 받으라”며 자신을 압박해오는 검찰을 향해 조사에 응할 일정을 제시하기는커녕 “엘시티 사건 연루자를 엄단하라”며 ‘느닷없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엘시티 비리에 야권의 대형 정치인이 개입돼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어 박 대통령이 엘시티 사건을 현 국면의 위기 탈출 및 반격 카드로 이용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자청해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인 이영복 회장의 부산 엘시티 비리 사건과 관련,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자금이 조성돼 여야 정치인과 공직자들에게 뇌물로 제공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이에 박 대통령은 오늘(16일) 법무부 장관에게 부산 엘시티 비리 사건에 대해 가능한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신속·철저하게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여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 대변인은 “이런 가운데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사건을 또 하나의 최순실 게이트라고 말하며 박 대통령 측근 인사가 개입됐다는 의혹마저 제기했는데 이는 근거 없는 정치공세”라고 말했다.
현재 박 대통령은 사실상 통치권 마비 상태다. 외교 일정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일정도 소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무회의조차 지난달 11일 이후 주재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까지 활용해 엘시티 관련자 엄단을 강력 주문한 데는 뭔가 ‘깊은 뜻’이 있으리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사실 지난 11일 엘시티 시행사의 이영복 회장이 자수 형식으로 검찰에 검거됐을 때 정치권 일각에서는 ‘배경에 뭔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석 달 넘게 도피해온 그가 갑자기 뜻을 바꿔 자수한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가 관련자에 대한 정보를 대거 제공하고 형량을 낮추기로 검찰과 물밑에서 협상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여권이 위기 탈출을 위해 기획한 정치공작의 냄새가 난다는 분석도 잇따라 내놓았다.
이 사건의 핵심의혹은 이 회장이 5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펼친 전방위적 로비의 대상이 누구인가다. 그렇기 때문에 이 회장이 어디까지 입을 여느냐에 모든 것이 달렸다. 엘시티 사업은 해운대 해수욕장 바로 앞에 101층짜리 주거형 호텔 1개 동과 85층짜리 아파트 2개 동 등을 내용으로 하는 총 2조7,000억원짜리 프로젝트다. 원래 부산시는 관광시설을 짓는 땅으로 부지를 조성했으나 어느 순간 공동주택·주상복합 등으로 토지용도변경이 이뤄졌고 당연히 온갖 특혜 시비와 로비 의혹이 터져 나왔다. 한마디로 ‘누가 얼마를 받고 안 될 일을 되게 해줬느냐’가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이 사건의 로비 대상은 부산을 넘어 중앙 정관계까지 뻗쳐 있다는 게 정설이다. 이 때문에 부산도 잘 알면서 중앙무대에서 더 힘깨나 쓴다는 인사들이 주요 로비 대상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그 로비의 종착점은 야권의 모 거물 정치인이라는 얘기가 일각에서 퍼졌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 거물 정치인을 몰락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엘시티 사건을 기획해나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흘러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느닷없이 엘시티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 엄단을 촉구하자 야권은 일순 혼돈에 빠졌다. 검찰 출신으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어느 정도 ‘급’이 되는 인물이 엮였단 보고를 받고 (청와대가) 물타기에 들어간 걸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부산 북강서갑의 전재수 민주당 의원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시에 허가권을 내준 부산시, 해운대의회 전부 다 새누리당이 장악했을 때고 동료 의원들에게 물어봐도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한다”며 “이게 지금 물타기라고 하는데…”라며 말을 줄였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박 대통령은 본인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겨 국면을 회피하려는 듯하다”고 말했다.
/맹준호·박형윤·류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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