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리랑’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한 독립군 출신 영화감독 춘사 나운규(1902∼1937) 선생이 광복회와 독립기념관이 공동 선정한 ‘10월의 독립운동가’로 뽑혔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선생은 회령에서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되자 연해주를 거쳐 북간도로 이주했다. 3·1운동 후 간도 지역에서 무장 독립운동이 활발해지자 선생은 철도와 통신 등 일제의 기관시설 파괴 임무를 띤 도판부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했다. 청산리 인근에서 독립군 훈련을 받기도 했지만 철도 파괴 계획에 대한 비밀문서가 일제의 손에 들어가면서 체포돼 보안법 위반 등으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회령에 머물던 선생은 1924년 1월 극단 예림회에 가입해 연극배우로 활동했고 이후 ‘심청전’ ‘흑과백’ ‘장한몽’ ‘농중조’ 등의 연극에 출연했다. 선생은 1926년 10월1일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영화 ‘아리랑’을 제작해 큰 주목을 받은 데 이어 ‘풍운아’ ‘잘 있거라’ ‘사랑을 찾아서’ 등의 작품을 제작했다.
특히 독립군으로 활약하던 시기의 경험을 토대로 제작한 ‘두만강을 건너서’는 일제의 검열로 제목을 ‘사랑을 찾아서’로 바꿔야 했다. 폐병으로 1937년 8월9일 향년 36세로 사망했다. 보훈처는 “일제강점기 제작하는 영화마다 일제의 검열 가위에 잘려나가기 일쑤였지만 선생은 조선인 관객들을 울고 웃게 하면서 영화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1993년 정부는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92년부터 선정해온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영화인이 이름을 올린 것은 처음이다./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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