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한 2종 보통면허조차 없는 ‘무면허 기자’가 40톤짜리 볼보트럭 FH트랙터를 몰고 스웨덴을 달리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운전대를 잡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겁 나는 일이었는데 생애 첫 자동차가 대형 트랙터라니…. 고백하건대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그림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볼보트럭 본사가 위치한 스웨덴에서 ‘2016 연비왕 세계대회’가 화려한 막을 올렸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트럭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월드컵이나 다름없는 행사다. 10일 열린 세계대회에 앞서 5~6일 양일 간 아시아·태평양지역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연비왕 대회가 진행됐다. 한국·중국·인도 등 총 11개국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된 운전자 14명이 참가한 이 대회의 첫날 기자들에게 볼보트럭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1.9㎞ 길이의 팔켄베리 서킷에 짐을 가득 실은 40톤짜리 FH트랙터 6x4가 위용을 뽐내며 서있었다.
잔뜩 긴장한 채 생애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차량의 어마어마한 크기만큼이나 확 트인 시야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기어를 자동모드로 맞추고 간단히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를 풀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동승한 운전 트레이너가 차근차근 설명해 준 덕분에 차가 부드럽게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승차감이 고급 세단 못지 않게 훌륭했다. 시동을 켰을 때 나는 소음도 거의 없었다.
상용차는 승용차에 비해 기어변속이 훨씬 까다롭다. 기어를 수동으로 바꿀 경우 짐의 무게와 차량이 서 있는 각도를 계산해야만 하기 때문. 다행히 볼보트럭은 기어 자동변속모드가 있어 전방을 주시하는 데 온 신경을 쏟을 수 있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2014년 볼보트럭이 상용차 업계 최초로 개발한 인공지능 자동변속기 ‘I-쉬프트 듀얼 클러치’다. 볼보트럭이 고성능 스포츠카에만 사용되던 기술을 트럭에 적용한 것. 두 개의 기어박스로 변속이나 감속이 필요한 구간에 동력 손실을 최소화시켜준다. 특히 혜택을 볼 수 있는 코스는 오르막이다. 화물 무게 때문에 아래쪽으로 힘이 작용할 때 기어 변속이 필요한 때 불필요한 감속을 줄여줘 연비효율을 높여준다.
인상적인 점은 운전대를 크게 돌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트럭 운전하면 팔·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힘겹게 운전대를 돌리는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올랐는데 막상 운전대를 잡아 보니 부드럽게 조정이 가능했다. 전자식 스티어링 휠(VDS)이 장착돼 자동으로 중심을 유지해준 덕분이다. VDS가 미장착된 트럭을 일직선으로 몰려면 운전대를 끊임없이 돌려야만 한다. 트레일러가 연결돼있는 경우라면 운전자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동승한 트레이너는 “VDS가 울퉁불퉁한 도로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며 “트럭 운전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일직선 후진인데 이 문제 역시 VDS 하나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경사로가 끝나자 직선구간에 다시 접어들었다. 액셀러레이터를 꾹 눌러 밟자 속도가 붙으면서 40톤이라는 무게를 잊을 정도로 시원하게 치고 나간다. 저속에서는 가벼웠던 운전대가 고속으로 접어들자 묵직해졌다.
1.9㎞짜리 서킷 한 바퀴를 완주하고 두 바퀴째 접어들자 동승한 트레이너의 조언이 좀 더 자세해졌다. 코너를 도는 방법부터 액셀을 밟으면 좋은 시점까지 단순히 빨리 달리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달릴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줬다. 볼보트럭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고객이 최대한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돕는 전사적 차원의 연비향상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상용차 고객에게 연비가 중요한 이유는 수익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숙련된 운전자라고 하더라도 속도 최적화·엔진 및 기어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연비가 15% 가량 차이 난다. 같은 거리를 운행하고도 실질수익이 달라지게 된다. 볼보트럭이 2년마다 세계 연비왕 대회를 개최하고 이를 기반으로 표준화된 운전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하는 이유다.
대회기간 내내 본사의 중역과 주요 엔지니어들이 고객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추후 기술개발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빚어진 운전자 교육의 연비향상 효과는 무려 60%에 달한다고 볼보트럭 관계자가 귀띔해줬다. 기자가 운전면허가 없다는 점을 감안 하더라도 첫 주행과 트레이너의 코치를 받은 두 번째 주행의 차이는 실로 놀라웠다.
비록 3.8㎞의 짧은 주행이었지만 이날 트럭 시승이 남긴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어느 럭셔리카 못지 않게 다양한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덕분에 무면허 기자도 완주가 가능했다는 점 그리고 그 기술 모두가 고객의 편의와 연비효율 향상을 지향한다는 점은 말로만 ‘고객’을 외치는 회사들에 경종을 울릴만했다. /팔켄베리(스웨덴)=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