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비상장기업 투자자들이 벤처기업에 총 3,620억 달러를 투자한 결과, ‘유니콘’ 기업의 장부 가치가 끝없이 치솟아 올랐다. 그러자 왜곡됐던 기술기업 상장시장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어느 기업이 다가오는 ‘심판의 날’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프란시스코에 소재한 렌딩 클럽 Lending Club의 상장은 지난 몇 년간 단행된 실리콘밸리 기업공개(IPO)중에서도 가장 성공이 확실해 보였다. 개인간 대출 중개 사이트인 렌딩 클럽은 기존 은행업계의 개편을 꿈꾸는 금융기술벤처, 일명 ‘핀테크’ 세계의 스타 업체다. 구글과 알리바바는 물론, 클라이너 퍼킨스 Kleiner Perkins와 유니언 스퀘어 벤처스 Union Square Ventures 같은 벤처투자업계 유명 업체들이 렌딩 클럽에 투자했다. 회사 이사회에는 모건 스탠리 Morgan Stanley 전 CEO 존 맥 John Mack, 전 미국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 Larry Summers, 한때 인터넷기업 IPO의 대모였던 클라이너 퍼킨스의 파트너 메리 미커 Mary Meeker 등 명망가들이 즐비하다. 돈에 대해서라면 동물적인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때문에 이 회사의 상장 소식은 큰 화제를 모았고, 실패를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2014년 12월 모건 스탠리와 골드먼 삭스가 주관한 렌딩 클럽 IPO의 공모가는 당초 제시됐던 상한선인 12~14달러를 넘어 15달러로 확정됐다. 공모주가 20배나 초과 청약되면서 순식간에 시가총액이 약 60억 달러로 늘어났다. 거래 첫날 렌딩 클럽의 주가는 약 70%까지 치솟았다가 다소 꺾이면서 막판엔 주당 23.42달러, 약 56% 상승으로 장을 마감했다. 서둘러 차익을 실현한 주주들 입장에선 굉장히 성공적인 상장이었다.
그리고 잔치는 끝났다. 상장 첫 해 매우 준수한 재무실적을 거뒀음에도, 렌딩 클럽의 주가는 상장 1주일 뒤 최고가(약 26달러)를 기록한 이후 줄곧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1~9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00% 이상 증가했고, 이자와 세금 등의 지출 전 이익을 나타내는 세전 · 이자지급전이익(EBITDA)이 200% 이상 상승했음에도 말이다. 최근 주가는 공모가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8달러 선에 머물고 있다.
당연히 렌딩 클럽의 CEO이자 공동창업자인 르노 라플랑슈 Renaud Laplanche는 주가가 더 높아지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단기 부침(浮沈)에 연연하진 않을 생각이다. 그는 “기업공개를 결정한 한 가지 이유는 렌딩 클럽의 브랜드와 신뢰성 구축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큰 회사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무척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중에게 숨기는 것 없이 투명하게 진행하고 싶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보상을 받았다. 렌딩 클럽 브랜드는 1년 전에 비해 훨씬 많이 자리를 잡았다.”
고객과 은행업계 사람들은 동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렌딩 클럽 주가가 20달러일 때 매수했던 투자자에게 브랜드 가치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 얼굴을 찌푸리면서 독설을 쏟아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렌딩 클럽에게만 국한된 사례가 아니다. IPO 시장에선 야심 찬 CEO, 굶주린 벤처투자자, 은행 우량고객인 기관투자자 세 집단의 부추김을 받은 월가의 상장 주관사들 때문에 기술기업의 상장이 과열되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주관사들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공모가를 잡은 후, 자신들의 목표였던 거래 첫날 주가가 치솟는 모습을 감상하곤 한다. 이후 주가가 첫날 가격대 밑으로 추락해도 이들로부터는 아무런 해명을 들을 수 없다(모건 스탠리와 골드먼 삭스는 본 기사를 위한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결과는 ‘좀비 IT주’의 탄생이다. 상장 후 한때 주가가 치솟았던 주식들이 투자자들에게 홀대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주식시장 한구석, 버려진 자들의 땅을 헤매고 있다.
이런 주식 중에는 모바일 게임업체 징가 Zynga(공모가 대비 75% 하락), 트위터(30% 하락), 그루폰(85% 하락) 등 친숙한 이름들도 많다. 공예 및 아트제품 판매사이트인 에치 Etsy는 작년 공모가 대비 56%, 상장 첫날 종가 대비 77% 폭락한 상태다. 님블 스토리지 Nimble Storage (공모가 대비 67% 하락) 등 덜 알려진 회사들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물론 링크트인 LinkedIn이나 전기차 업체 테슬라 모터스 Tesla Motors, 페이스북(초기엔 말도 많고 우여곡절도 많았다)처럼 최근 몇 년간 주가가 치솟은 사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실패한 기업공개가 수적으로 압도적이기 때문에 이들은 예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기업공개 방식은 역대 최악의 오류와 불평등으로 가득한 것일까? 분명 그렇게 보인다. 투자자를 만족시키는 것 외에도 인재 영입과 경쟁력 유지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IT기업들에게 현재의 방식은 특히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아직 IPO를 하지 않았지만 높은 평가를 받는 기술기업들, 일명 ‘유니콘’들에겐 나쁜 징후라 할 수 있다. 유니콘은 10억 달러 이상 기업가치를 평가받는 비상장 벤처기업을 일컫는다. 과거엔 드물었던 유니콘이 요즘 실리콘밸리 안팎에서 흔해졌다. 우버 Uber와 에어비엔비 Airbnb 같은 유명 기업은 물론, 앱터스 Apttus와 헬로프레시 HelloFresh 같은 아직 낯선 업체들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포춘이 지난해 이 현상을 커버스토리로 다뤘을 때만 해도, 유니콘 기업 수는 80개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후 꾸준히 늘어 최근 재집계한 결과 173개로 나타났다(본 기사의 ‘새로운 유니콘 리스트’ 참조). 벤처투자의 성공 여부를 추적하는 리서치 업체 CB 인사이트 CB Insights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벤처업계로 흘러 들어간 총 투자금액은 약 3,62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기술기업 상장이 예상되는 현 시점에서, 거의 7년간 강세를 보였던 미 증시의 불안정성이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올해 첫 2주간, 미국 증시는 과거 같은 기간 대비 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S&P 500 지수는 첫 거래 10일간 8%나 폭락했고, S&P 기술기업 부문은 전체 지수 대비 1% 더 떨어졌다.
이미 기술기업 IPO가 한풀 꺾인 상황에서 주가하락은 치명타다. 1월 중순, IPO 관련 전문조사업체 르네상스 캐피털 Renaissance Capital은 ‘사라져 가는 기술기업 IPO 탐색(Exploring the Disappearing Technology IPO)’이라는 특별보고서를 발간했다. 연구 결과는 상당히 우울하다. 2012~2014년에는 연평균 36건의 벤처기술기업 상장이 이뤄졌다. 하지만 작년에는 그 수가 23건으로 줄었고, 특히 하반기에는 단 7건에 불과했다. 8월 증시가 조정 받았던 점이 여기에 영향을 끼쳤다. 기술기업의 창업에서 상장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도 역대 최장이었다.
전형적인 기술기업들의 수익률은 최근 몇 년간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상장한 기술기업들의 EBITDA 중간값은 -900만 달러였다.
르네상스의 고위급 임원으로 IPO관련 상장지수펀드(ETF)를 총괄하는 캐슬린 스미스 Kathleen Smith는 이 모든 지표를 이유로 들어, 기업공개가 올 들어 계속 침체하고 있으며, 유니콘들도 머지 않아 변화를 체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미스는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평가는 ‘상상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이젠 거품이 꺼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가치 재평가는 신규 자금 유치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업계에 ‘심판의 날’이 다가오는 듯하다. 유니콘 기업 173곳에 투자된 총 금액은 무려 5,850억 달러에 달한다. 이 중 상당 수가 수익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수치다. 유니콘 ‘팬’들과 (투자 기준이 덜 엄격한) 신종 벤처투자자들로부터 자금유입이 이어진 결과, 기업가치는 심각하게 고평가 되었다. 그 결과 인기 기업들의 인수 후보군이 적어졌다.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을 만큼 투자를 충분히 유치한 기업도 상당수 있다. 그러나 이들조차도 ‘하강기’에는 대규모 이탈이나 심각한 사기저하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위치기반 서비스업체 포스퀘어 Foursquare는 지난 1월 중순 벤처펀딩을 통해 새롭게 4,500만 달러를 투자 받았다. 하지만 이 투자의 기준이 된 기업가치는 몇 해 전 투자자들이 매겼던 6억 5,000만 달러의 절반도 안 되는 액수였다. 벤처캐피털 데이터 제공업체 피치북 PitchBook의 창립자 겸 CEO 존 개버트 John Gabbert는 “몇몇 사업모델에선 앞으로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록 기업공개 시장이 침체 중이지만, IPO 과정에서 ‘출구’를 찾으려는 기술기업들에 대한 벤처투자업계의 압박도 심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가가 공모가 이하로 떨어질 때마다, 기업공개는 부정적인 피드백이라는 악순환을 만들게 된다. 일반 유니콘 기업이 버텨나가기가 그만큼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그들에게 근본적으로 불리한 IPO 절차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기술기업 IPO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파악하려면, 그 절차를 약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행 방식은 월가 주관사와 그 고객인 벤처캐피털, 사모펀드,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이익을 보는 대신, ‘다음 대박(the Next Big Thing)’을 잡았다고 세뇌에 빠진 개인 및 최종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벤처투자자나 비상장주 투자자들도 기업공개 절차에 대해 할 말은 있다. 당연히 이들은 투자를 통해 돈을 벌고 싶어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주관사들을 계속 압박해 공모가를 최대한 높여 이익을 최대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절차가 끝나 갈 무렵엔 보유 중인 해당 회사의 모든 지분을 팔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이들은 보통 주식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지만 실제 상장을 통해 매각할 수 있는 유통주식(float)은 공급을 줄이기 위해 전체의 일부(약 15%)로 묶어 놓는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부족하다면 결과는 뻔하다. 첫 거래일 시작과 함께 주가가 계속 오른다. 이런 방식으로 벤처캐피털은 꿩도 먹고 알도 먹는다. 이들은 비상장 때 초기 투자를 통해 의기양양하게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그 일환으로 상장과 함께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지분 대부분을 계속 들고 있는 게 현명한 선택임을 알고 있다. 거래 첫날 주가가 많이 오른다면 더욱 그렇다.
‘게임의 법칙’을 만드는 주인공은 월가의 대형 주관사들이다. 유니언 스퀘어 벤처스의 파트너 존 버트릭 John Buttrick은 “20~30% 정도 오르지 않는다면 그 기업공개는 실패라는 게 모건 스탠리와 골드먼 삭스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그게 바로 고객들이 평가하는 척도다. 주관사 상당수가 상장 후 첫 2~4주간 거래가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 기간이 끝나면 나 몰라라 하며 가격을 시장에 맡긴다. 장기적인 관점을 지향한다고 말은 하지만, 데이터를 보면 신규상장 기술주는 굉장히 주가변동성이 높은 경향을 가진다. 주관사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기업공개와 관련된 또 다른 주요 주체가 피델리티, T. 로 프라이스 T. Rowe Price, 캐피털그룹 Capital Group 같은 대형 기관투자자들이다. 이들도 즉각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첫날 주가 상승을 선호한다. 25년 전 피델리티의 마젤란 펀드를 운용했던 피터 린치 Peter Lynch는 상장주를 ‘석양주(sunset stocks)’라고 불렀다. ‘기업공개에 관련된 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태양은 절대 지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흥미롭게도 기업공개는 그 동안 혁신을 거부해 왔다. 지난 10여 년 간, 기업들은 상장 없이 자본을 투자 받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롭고 영리한 방식을 만들어 냈다. 이제는 과거와 달리 투입자본을 비공개로 유치하거나, 기업 내부자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을 투자자들에게 매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나와 있다. 2013년 발효된 벤처기업지원법(Jump start Our Business Startups Act · JOBS) 덕분에, 비교적 작은 기업들도 과거보다 훨씬 자유롭게 사업설명서를 비공식적으로 제공하고 투자를 유치할 수 있게 됐다. 상장기업에 대한 과도한 감시와 규제 같은 여러 단점을 피하면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다. 유니콘의 등장도 이 같은 변화의 결과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월가가 기업공개 절차의 주도권을 놓쳤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주관사의 수가 점점 줄고 있다. 유럽 은행들은 이 시장에서 거의 사라져 버렸다. 그 결과 기존 주요 주관사들은 자신들과 최대 고객들에게만 유리한 현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해왔다.
유니콘이 여전히 고평가 논란을 빚고 있음에도, 이들 기업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는 ‘상장 카르텔’ 합류 외에는 대규모 자본을 유치할 수 있는 대안이 거의 없다. 기업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비상장 시장에서 원하는 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기업은 어쩌다 우버 같은 업체 하나다. 반면 신규투자 유치를 위해 주관사에 순종해야 하는 기업은 수백 개에 이르고 있다.
일반투자자가 이로 인해 어떻게 손해를 보는지는 카메라 및 캠코더 제작업체 고프로 GoPro의 사례가 잘 말해준다. 이 회사는 스노 보드나 베이스 점핑 (*역주: 건물이나 절벽 등에서 뛰어내리는 스포츠) 같은 격렬한 운동의 애호가들이 머리에 쓰기 좋은 장착형 카메라를 생산하고 있다.
고프로의 기업공개 전후, 창립자 겸 CEO 닉 우드먼 Nick Woodman은 회사의 갑작스런 성공을 다룬 많은 인터뷰에서 성공한 기업인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4년 6월 상장된 고프로의 공모가는 주당 24달러였고, 회사는 4억 9,100만 달러를 유치했다. 주관사 J.P. 모건 체이스 J.P. Morgan Chase, 시티그룹, 바클레이즈 Barclays는 수수료로 2,800만 달러 이상을 챙겼다. 상장 직후 고프로 주가는 50% 가량 급등하면서 가장 중요한 ‘첫날 대박’을 터뜨렸다. 3개월이 지난 2014년 9월 30일에는 주가가 95달러 선까지 치솟으며 고프로의 기업가치가 130억 달러를 넘기도 했다.
요즘 우드먼은 언론에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그는 본 기사를 위한 인터뷰 요청도 거부했다). 최근 몇 달간 고프로 주가는 산길을 내려가는 산악자전거보다 더 숨막히는 속도로 빠르게 추락했다. 1월 중순 고프로는 실망스러운 4분기 실적을 예고하고 직원 7%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주가 급락으로 거래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그리고 주주들의 위임장을 받은 변호사들이 재빨리 집단소송에 나섰다. 최근 고프로 주가는 공모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달러 미만에서 거래되고 있다.
뼈아픈 반전이다. 하지만 고프로의 기업공개는 기관투자자들에겐 아마도 좋은 추억일 것이다. 24달러에 주식을 사서 36달러로 치솟았을 때 50% 수익률을 올리고 팔았으니, 나쁠 게 뭐가 있겠는가?
첫날 매수 열풍은 벤처투자자와 기관투자자뿐만 아니라 주관사에도 좋은 일이다. 이들의 최대 단골이 벤처투자자 및 대형 기관투자자들이기 때문이다. 주관사 수수료(고프로의 경우 6%) 수익도 짭짤하다. 하지만 주관사의 진정한 목표는 만족한 고객들이 향후에도 계속 찾아오는 것이다. 골드먼 삭스의 내부 표어 중에 ‘장기적인 탐욕(long-term greedy)’이란 것이 있는데, 상장주관 절차는 이 철학이 어떻게 실천되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다. 이곳은 실리콘밸리 발 파괴적 변화의 물결에서 무풍지대로 남은 몇 안 되는 산업 중 한곳이기도 하다.
윌리엄 햄브레흐트 William Hambrecht는 자신이 세운 샌프란시스코의 햄브레흐트 앤드 퀴스트 Hambrecht & Quist(H&Q)은행-J.P. 모건 체이스의 전신에 매각됐다-을 약 20년 전 떠난 이후, 기업공개 주관 방식 및 공모가 가격 결정 변화의 필요성을 줄곧 설파해왔다. 그는 기업공개를 장악하고 홍보하는 월가 카르텔에 정면 도전하고자 1998년 W.R.햄브레흐트 앤드 컴퍼니 W.R. Hambrecht & Co를 설립했다. 설립 초기인 2004년, 구글 기업공개 주관사 중 한 곳으로 참여한 것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 중 하나다(모건 스탠리, 크레디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 주도로 총 31개사가 참여했다).
11년이 지난 지금, 구글이 햄브레흐트 경매방식을 도입했을 당시의 엄청난 논란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그 결과 구글은 한 세대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햄브레흐트는 당시 구글 주식을 인터넷 경매에 부쳤다. 신청자들이 각자 매수희망가격을 제출하면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순으로 주식을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주관사들은 구글 공모가를 예상보다 낮은 85달러로 결정했다. 거래 첫날 주가는 17% 상승해 100달러 정도로 장을 마감했다(상장을 주도한 주관사들은 마지막 단계에서 경매의 원칙을 엄격히 지키지 않았다).
구글은 새로운 상장 방식 실험을 통해 손해를 보지 않았다. 현재 구글 주가는 공모가 대비 1,500% 상승했고, 기업(작년에 ‘알파벳 Alphabet’으로 개명했다) 시장가치가 5,000억 달러에 육박해 애플의 뒤를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주가 흐름 그래프는 마치 마터호른 봉우리의 한쪽만 그려 놓은 듯 가파르다. 하지만 구글 이후 경매제도를 통한 상장을 희망한 회사는 매우 드문 상황이다(그 중 몇몇은 성공을 거뒀다. 펀드평가사 모닝스타 Morningstar의 주가는 공모가 대비 400% 이상, 금융서비스기업 인터랙티브 브로커 그룹 Interactive Broker Group은 50% 올랐다). 구글의 IPO는 전환점이라기보단 역사 속의 한 일화로 남았다.
햄브레흐트는 현재의 IPO 준비 및 매각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현 체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며 ‘기존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대형 주관사들도 머리로는 경매방식이 더 공정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바꿀 의지가 없다고 지적한다. 현재 방식이 너무나 큰 수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는 “주관사들이 기존 방식을 고집하는 한 이유는 바로 공모가를 낮게 매길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들은) 자사 최우량 고객들에게 따로 물량을 배정할 수 있다. 또한 주요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처음 6개월에서 1년간은 독점 판매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요인이 주관사의 수익성을 높여준다.”
그는 알리바바가 기업공개 후 주당 68달러에서 115달러로 뛰었을 때를 예로 들었다. 주관사들은 당시 대박을 거둔 기관투자자들이 나중에 이에 대한 보답을 해주면서 수익을 얻었다. 햄브레흐트는 “유통시장에서 주식을 사는 주주들은 결국 ‘수건 돌리기’를 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페이스북 기업공개 이후 잠시 고려됐던 것처럼) 입법 개혁을 통해 은행에 압박을 가하거나 기업공개시장에 대한 대형 은행의 장악력을 약화시키지 않는 한, 현 상황이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뿌리깊은 기득권 때문이다.”
햄브레흐트는 유명 주관사들의 영향력을 꺾을 수 없다는 현실에 깊이 절망한 나머지 결국 싸움을 끝냈다. 대신 H&Q 시절로 돌아가 중소 벤처기업의 IPO에 집중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현 회사인 햄브레흐트 앤드 컴퍼니는 기업가치가 유니콘 기준에 미달해 대형 은행들의 관심을 덜 받는 기업의 상장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포춘과 인터뷰를 진행한 신규 상장기업의 몇몇 경영인은 상장 준비절차에서 기업에 불리한 점이 일부 있다고 해도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피트비트 Fitbit의 공동창립자 겸 CEO 제임스 박 James Park과 CFO 윌리엄 제렐라 William Zerella가 이런 주장에 동의한다.
지난해 6월 운동관리 웨어러블기기 제조사 피트비트는 당초 예상 범위를 뛰어 넘은 주당 20달러에 상장을 진행했다. 모건 스탠리가 공모주관사였다. 상장 즉시 주가는 52% 치솟았고, 비슷한 선에서 장을 마감했다. 그 결과 피트비트의 시가총액은 65억 달러, 제임스 박의 재산은 거의 5억 달러가 됐다. 11월 피트비트는 주당 29달러에 2차 주식 매각(블록 딜)을 완료했다. 매각 전날 피트비트 주식의 거래가는 31.68달러였다. 매각 대상인 1,700만 주 중 벤처캐피털들이 내놓은 주식이 1,400만 주에 달했다. 6개월의 보호예수기한이 다가오면서 점점 거세지고 있던 주가 하락 압박을 줄이려는 시도였다. 현재 피트비트의 주가는 신제품이 호평을 받지 못하면서 공모가 이하로 더 떨어져있다.
이처럼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탔음에도, 제임스 박과 제렐라는 IPO 진행 방식에 더없이 만족한다고 말했다. 제렐라는 “주관사들은 우리의 스토리를 이해했고 월가에 이를 명확히 전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며 업체들의 공모 방식에 공을 돌렸다. 물론 피트비트가 업계의 선두권이고 수익성도 높다는 사실이 도움이 되었다.
박은 자신과 경영진이 IPO 자체와 거래 첫날 뉴욕증권거래소에 방문한 것을 매우 벅차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에겐 공모가를 높여 더 많은 투자금을 유치하지 못한 데 대한 후회가 없다. 참가자들 각자가 제 몫을 가져가는 게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상장 이후 처음 며칠 동안은) 공모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업공개는 매우 정교한 절차이고, 최종 공모가는 적절히 균형을 맞춘 결과라고 생각한다. 첫날 주가가 급등한 덕분에 직원들의 사기가 올랐고, 언론으로부터도 관심을 많이 받았다.”
다른 장점도 있었다. 박은 피트비트의 높은 수익성(EBITDA 기준으로 약 23%)이 IPO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고 생각한다. 애플 등 여러 강력한 경쟁자들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피트비트는 업계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박은 회사가 향후 M&A에 활용할 수 있는 ‘실탄’을 갖췄고, 기업공개를 통해 직원들이 더욱 뭉치는 계기(주가 상승)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기업공개는) 멋진 이벤트였다. 세계적인 회사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해주었다.”
렌딩 클럽의 라플랑슈도 나름대로 상장 경험을 최대한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려 노력 중이다. 그래도 초반 몇 주간에 걸친 고공행진 종료 후의 주가 흐름은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그는 주가가 25달러를 넘지 않고 계속 15달러 선에서 거래됐다면, (특히 개인투자자들의) 실망이 덜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라플랑슈는 “그건 장기투자를 한다면 우리 주식이 개인투자자들에게 좋을 결과 가져다 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현행 IPO 절차에 대한 감사의 말은 없었다. 렌딩 클럽의 주가 등락폭이 컸던 이유 중 하나는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 문제였다. 골드먼 삭스와 모건 스탠리는 전체 지분의 10~15%를 기업공개를 통해 매각할 것을 주장했고, 결국 그 비율은 약 15%로 결정됐다. 그 결과로 발생한 희소성이 거래 첫날 인기의 원인이었다. 좋은 소식은 거기까지였다. 6개월간의 보호예수기간이 끝나자, 렌딩 클럽의 벤처투자자들은 시장에 주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연이든 아니든, 지난해 6월 초 약 19달러 선이었던 렌딩 클럽의 주가는 3개월 후 11달러 선까지 하락했다. 작년 한해 동안 벤처투자자들이 보유 주식을 매각하면서 공급량이 늘어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흐름이었다.
물론 라플랑슈는 수요-공급 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들도 매매 제한기간이나 유통주식 비율 같은 세세한 점을 잘 알고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은 특히 답답할 것이다. ‘이 회사가 왜 이러지? 주가가 떨어지는 데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는 “우리 회사가 이런 면에서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기업의 본질로만 보면 주가 상황을 설명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 말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어느 지표를 봐도 렌딩 클럽은 IPO 직후 있었던 우여곡절을 넘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견고한 회사다. 하지만 IT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점점 열악해지는 상황에서, 모든 업체가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 살아남을 신생기업
어느 기업이 인기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기초체력을 갖춘 유니콘일까? 흔들릴 가능성이 높은 3곳과 낮은 3곳을 각각 알아봤다.
유망한 기업 3곳
핀터레스트 PINTEREST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이 사진공유 서비스업체가 몇년 만에 매출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법 많은 광고주를 유치하고 있다. 핀터레스트는 현재 기업공개를 위한 토대를 다지고 있다. 야심 차게 제시한 매출목표를 가볍게 달성함으로써 뮤추얼펀드 투자자들이 공모가를 깎을 여지도 원천적으로 없앴다.
아드옌 ADYEN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둔 이 결제서비스 업체를 통해 지난해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총 500억 달러가 거래됐다. 이 과정에서 매출 3억 5,000만 달러가 발생했고, (놀랍게도) 실제 이익이 나기도 했다. 기업가치 23억 달러인 아드옌은 현재 스트라이프 Stripe-기업가치는 두 배지만 거래금액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보다 훨씬 견실한 상황이다.
도큐사인 DOCUSIGN
전자서명 혹은 ‘e-서명’은 지루해 보일진 몰라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샌프란시스코에 소재한 도큐사인은 업계 선두주자로, 포춘 500대 기업 여러 곳을 고객사로 거느리고 있다.
불안한 기업 3곳
인스타카트 INSTACART
올해 또 다른 추락이 예상되는 분야로 주문형 배달서비스가 꼽히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소재 식료품 배달업체인 인스타카트는 이 업계의 대표주자다. 벤처투자자 빌 걸리 Bill Gurley는 고전하는 인스타카트의 단위당 이익모델을 ‘85센트를 벌려고 몇 달러를 쓰는 것’이라 비유했다.
위워크 WEWORK
투자자들은 매우 야심 찬 비전 사무공간 대여업체 위워크의 가치를 소프트웨어 업체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위워크가 100억 달러의 밸류에이션에 부합하기 위해선 인력, 장기임대 시스템, 그리고 사무용 가구를 갖추고 소프트웨어 업체만큼 성장해야 한다.
드롭박스 DROPBOX
캘리포니아 주 레드우드 시티 Redwood City에 소재한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로, 매출 성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많은 보고서가 쏟아졌다. 보고서 내용이 믿기지 않는다면, 경쟁업체 박스 Box의 주가 추이를 살펴보라. 비상장 때 마지막 가치평가보다 공모가가 29% 낮게 결정된데다, 현재는 거기에서도 주가가 54% 더 떨어졌다.
■ 드러난 불만 지표
최근 몇 년간 기술기업 IPO의 수익성은 상장 후 주가 성적과 함께 곤두박질치는 모습을 보여왔다. 르네상스 캐피털의 조사에 따르면,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기술기업의 상장 건수는 지난해 크게 감소했다. 지금까진 상장 기업 대부분의 실적도 저조한 상황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WILLIAM D. CO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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