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4분기 말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한 가계신용이 1,166조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사실상 가계인 개인사업자 대출 233조원을 합한 전체 가계부채는 1,399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94%를 차지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5%를 크게 상회한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도 174%로 소비를 저해하지 않는 수준인 100~110%를 크게 상회해 민간 소비를 둔화시키고 있다. 정부는 대책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계부채를 누르자니 지난 2009년 이후 7년째 침체하다 이제 막 회복 기미를 보이는 부동산 경기가 주저앉을까 봐 걱정이고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도록 두자니 가계부채가 걱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증하는 가계부채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계부채의 93%가 비주택구입용임을 알 수 있다. 은행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종전에 60% 내외를 유지해오던 주택구입 목적의 대출 비중이 40% 수준까지 하락했다. 반면 생계형·전월세·대출금상환 목적의 대출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에도 같은 비율을 적용하면 은행과 제2금융권을 합한 주택담보대출 480조원의 60%인 254조원이 비주택 구입 목적 대출이다. 여기에다 예금취급기관의 무담보대출 301조원과 기타 금융기관의 대출 322조원, 판매신용 63조원, 개인사업자 대출 233조원을 합하면 전체 가계부채의 93%가 주택 구입과 무관한 생계형·사업자금·전월세자금·대출금상환 목적의 대출로 추정된다.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이 경제가 어려워져 초래된 것이다. 경기가 호전돼 일자리가 늘어나면 줄어들 수 있는 소지가 많다.
주택구입용 대출의 경우 2002~2003년 주택 가격 급등기에 대출을 안고 집을 산 많은 가계에서 아직 주택가격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아 집을 팔 경우 대출금 갚고 나면 작은 집이나 외곽으로 이사 갈 형편이 되지 못해 대출금을 갚기보다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금을 상환하기 위해 다시 대출을 받는 일이 지속되는 실정이다. 이사도 못 하고 퇴직해 수입도 없는데 빚을 계속 안고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 하우스푸어 현상이 지속되고 있으니 소비를 할 수 없어 경기는 계속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집을 팔아 대출금을 갚고 좀 작은 집이나 외곽으로 이사 갈 정도가 될 만큼 주택 가격이 정상화돼줘야 2002~2003년 주택 가격 급등기에 빌린 대출금이 상환돼 가계부채가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경우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135%였으나 주택가격이 회복되면서 지금은 105%로 하락해 소비가 회복되면서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가계부채의 원인을 잘못 진단해 이제 막 회복 기미를 보이는 부동산 경기를 꺾으면 가계부채 상환은 어렵게 되고 하우스푸어들은 소비를 할 수 없어 경기 둔화가 계속될 것이므로 가계부채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비주택구입 목적의 대출 비중이 이처럼 높을 경우 일자리 활성화나 임금피크제로 은퇴 노장년의 자영업 등 생계형 대출 수요를 줄이고 임대주택 활성화로 전월세 대출 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사용해야 한다. 하우스푸어 현상이 해소돼 대출금이 상환될 수 있도록 부동산 경기 정상화도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계대출이 증가해도 자산 증가가 수반되는 경우 자산 가격이 대출액 이하로 폭락하지 않는 한 대출 부실화의 우려가 적다. 최근처럼 제2금융권과 기타 금융기관 대출의 고금리 무담보 대출과 판매신용이 증가하는 경우 경기가 부진해 가계소득이 뒷받침되지 못하거나 금리가 오르면 부실화할 우려가 크다. 제2금융권 무담보 기타 대출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70% 이상의 고위험 담보대출은 건전성 규제 등 위험 관리를 철저히 해 부실 대출이 증가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금융회사도 고위험 대출에 대해서는 사전 워크아웃이나 채무 재조정을 통해 금융 부실을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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