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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직장인 송준호(가명)씨는 최근 인터넷에서 중학생 자녀가 다닐 어학원 정보를 검색하다 깜짝 놀랐다. 한 어학원 사이트의 '수강 후기' 게시판에서 '아이스 팝니다' '떨 판매' 등 국적 불명의 단어를 담은 광고 글을 여럿 발견했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 등에서 뜻을 찾아보니 '아이스'는 필로폰을, '떨'은 대마초를 뜻하는 은어. 초·중·고등학생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어학원 게시판에 마약을 판매한다는 광고 글이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송씨는 "해당 광고 글을 보고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어학원 측에 삭제를 요청하기는 했으나 혹시 아이들이 읽었나 하는 생각에 여전히 찜찜하다"고 토로했다.
필로폰(아이스), 대마초(떨) 등을 판다는 광고 글이 어학원은 물론 대학 게시판까지 파고들면서 마약 중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소년은 물론 대학생들까지 마약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마약 판매업자들이 아이스·떨 등 은어를 쓴 마약 판매 광고 글을 어학원·대학·기업·펜션·유학원 등의 게시판에 무차별적으로 올리고 있다. 각 사이트에 도배한 광고 글로 판매 사실을 널리 알리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연락해 개별 판매하는 방식이다. 일부는 유튜브에서 '작대기 아이스 허브 떨 판매 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텔레그램·위커 등 익명성이 보장되거나 대화가 저장되지 않는 SNS 아이디를 올려 매수자와 접선을 시도한다. 또 합법·리얼 등의 문구로 청소년 등을 유혹하는가 하면 '특정 검색 망을 통해 ○○ 사이트에 접속하면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으로 구매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문제는 이들 광고 글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는 청소년 마약 사범 수를 증가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할 우려가 크지만 현재 마땅히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의료·과학용 외에 마약을 소지·판매·제조·수출 등을 한 자는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을 받는다. 또 이를 영리 목적이나 상습적으로 행할 경우 무기나 10년 이상의 징역 등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광고 글 등 판매를 위한 행위는 아직 처벌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마약 광고 글은 판단력이 흐린 청소년에게 더욱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아직 수적으로는 많지 않지만 매해 청소년 마약 사범 수가 늘고 있는 점도 광고 글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2년만 해도 38명에 불과했던 청소년 마약사범 수는 지난해 102명으로 2년 새 3배 넘게 늘었다. 올 상반기 적발된 청소년 마약사범 수만 79명에 달하는 등 매년 증가 추세다.
한편 검찰은 마약 관련 광고 글이 인터넷상에 확산되자 의원이나 정부 발의를 통해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마약 판매 광고 글만 올려도 처벌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안현덕기자 alway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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