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났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이라면 지역의 발전에 놀라기도, 일부는 실망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향의 겉모습 뒤에 숨은 진짜 모습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바로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문제다.
추석을 며칠 앞둔 이달 초 전국 지자체장들은 정부에 대해 호소문에 가까운 성명서를 내놓았다. 지자체들이 떠안아야 하는 복지비의 급속한 증가로 지방재정이 파탄 날 수도 있다며 중앙정부의 추가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물론 민선 6기를 맞아 지자체의 수장들이 내년 예산안을 놓고 정부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엄살'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복지비 증가에 따른 지방재정 파탄을 일컫는 이른바 '복지 디폴트' 위기를 단순한 하소연으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1995년 63%에서 올해 50%로 악화됐다. 자치단체가 앞으로 4년간 감내해야 할 복지비 증가액이 5조7,000억원에 달하는 점에 비춰볼 때 재정자립도가 40%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짙다. 재정의 절반 이상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데 이를 '자치'로 봐야 할지 의문이다.
결국 돈의 문제다. 정부 역시 돈을 곳간에 숨겨둔 채 지자체에 일부러 내려주지 않는 것도 아니다. 경기 위축 등으로 세수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건강 증진'을 내세워 담뱃값을 두 배 가까이 올리겠다는 것도 판매가의 62%를 차지하는 세금에 대한 달콤한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담뱃값과 관련한 정부부처의 그 누구도 '건강을 위해서'라고만 외칠 뿐이지 재정현실과의 연관성에 대해 겉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늘 그래 왔듯이 말이다.
정부가 이처럼 돈 문제에 대해 국민이든, 지자체든 솔직하지 못한 점은 큰 문제다. 한발 더 나아가 위압적인 태도까지 보이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이달 초 전국 시군구 단체장들이 성명서를 발표한 날 정부의 대응을 보더라도 그렇다. 안전행정부는 성명서가 발표되자마자 곧바로 지방재정 개선을 위해 관계기관들과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방만한 지방재정을 점검하겠다고 발표했다.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아이에게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매질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박근혜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13년 10월에 대통령 직속으로 지방자치발전위원회를 만들었다. 중앙사무의 지방 이전 등을 포함해 앞으로 우리나라 지방자치를 한 단계 성숙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돈 문제를 놓고 날카롭게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면 지난 20년간의 지방자치는 과연 어디로 갔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중앙정부가 재원부족을 호소하는 지자체들에 대화와 설득은 못할망정 으름장을 놓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자치발전'의 참모습은 아닐 것이다.
복지국가는 당장 어려움이 있더라도 어차피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삶의 질을 높이고 내수활성화를 통한 경제회복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복지를 강화해나가는 길이 맞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증세를 통한 세수 확대에 나서든지 만일 그럴 수도 없다면 행정의 파트너인 지자체들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현 정부가 목소리를 높이는 창조경제는 직면한 문제에 대해 터놓고 솔직히 얘기하고 대화와 설득을 위한 소통이 이뤄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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