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발생한 부산 해운대 주상복합건물 화재 이후 대형 화재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이번 화재는 불이 잘 번질 수 있는 폴리염화비닐접착제를 사용한 유리섬유를 외벽에 고정하는 바람에 4층에서 난 불이 꼭대기인 38층까지 삽시간에 번진 것이 특징이다. 소방관련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4층과 불에 타는 외벽이 문제였다. 대구지하철 참사(2003년),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2008년),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2009년) 등 최근 발생한 대형 화재와 마찬가지로 소방법의 허점이 다시 드러난 것이다. ◇고층건물 소방법 강화 시급=우리나라 소방법은 아직 미국이나 일본 등 소방 선진국과 비교해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다양한 화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지 않은데다 준공 전에 실시하는 소방완공검사를 한번 통과한 후에는 '1년에 1번'만 점검을 받으면 문제가 없다. 소방설비업체에 근무하는 강모씨는 "준공검사를 마치고 나면 법적 하자가 없다는 것이 더 문제"라며 "노후화된 스프링클러나 화재감지기도 한 해 딱 한번 검사를 받으면 끝인데 검사는 관청이 진행하지 않고 외부 용역업체에 위임하기 때문에 대충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요즘은 공무원들이 준공 전 검사를 원칙대로 진행해 결격사유는 없지만 소방방재법과 건축법에서는 마지노선을 내세운다"며 준공 이후에 법령이 꼼꼼하게 챙기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짚었다. 소방 선진국과 비교해봐도 아직 우리 소방법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미국의 경우 방화설비 관련 점검을 점검 대상에 따라 매주, 혹은 매 분기별로 나눠 관리하고 있다. 일본은 아파트같이 다세대가 모여 사는 공동주택의 경우 빌딩과 같은 일반 건축물과 동일한 기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택은 화재 발생 가능성이나 위험성이 낮다고 보고 스프링클러나 자동화재탐지설비 설치 의무기준을 대폭 낮췄다. ◇재건축 대상 아파트는 화재 무방비 상태=준공 후 20~30년 이상 흐른 노후 아파트의 경우 화재에 대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서초구의 A아파트 관리소는 소방검사를 용역업체가 담당하지 않냐는 질문에 "법에는 16층 이상 아파트만 외부업체에 맡기도록 의무화했다"면서 관리소에서 해결한다고 답했다. 1,000여가구의 안전을 전기실 직원이 다른 업무와 함께 보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은 이뿐이 아니다. 관리소 직원은 "화재감지기는 현재 재건축을 앞두고 다 죽어 있는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물론 스프링클러 설치를 법으로 규정하기 전에 설계ㆍ준공한 건물이라 스프링클러도 없는 상태다. 이 직원은 "화재감지기와 연결된 전기배선을 고치려고 알아보니 수억원이 든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재건축을 앞두고 주민들이 비용 부담을 하려 하겠나"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내에 준공 20년이 지난 아파트는 약 23만가구다. 그중에서도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대상으로 언급되는 주요 아파트단지가 위치한 서초ㆍ강남ㆍ영등포의 경우 노후 아파트 비율이 30%에 달한다. 정재환 소방방재청 소방제도과 주임은 "스프링클러와 같은 화재 안전설비를 노후주택에 설치하려면 배관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천장이 20~25㎝ 낮아져 시공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고비용'과 '구조적 한계'가 생명의 방패가 될 수는 없다. 소방설비업체의 한 관계자는 "가정에서 배터리로 작동되는 단독 경보형 화재감지기를 단독ㆍ노후 공동주택에 보급하는 식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 변화 못 쫓아가는 법=사회는 빨리 바뀌고 있지만 법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사례는 지난해 3월 발의된 초고층 건축물의 재난관리에 관한 법률(초고층 특별법)이다. 박형주 경원전문대 소방시스템관리학과 교수는 "미국은 초고층 빌딩의 경우 연면적 2만㎡당 방화관리자를 1명씩 두지만 우리나라는 20층이든 50층이든 방화관리자는 딱 한명이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삼성동 COEX 트레이드타워나 영등포 타임스퀘어 등은 규모로 봤을 때 한명이 모든 구역을 확실히 책임지기 어렵기 때문에 법으로 명확하게 구역별 담당자를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대비해 초고층 건물에 별도의 피난안전구역을 만들고 방재관리시스템을 확충하는 내용을 담은 '초고층 특별법(유정현 한나라당 의원 대표발의)'은 국회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전국의 초고층 빌딩을 규제할 수 있는 법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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