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복지법'이 오는 18일로 시행 한 달을 맞는다.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을 계기로 예술인의 복지를 위해 제정된 이 법에 따라 정부는 취업 지원과 창작금 지원 등에 70억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표준계약서를 개발ㆍ보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법의 핵심 사항인 산재보험에 가입한 이는 현재까지 단 한 명도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1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후 배우ㆍ문인ㆍ화가 등은 물론 부상 위험이 상존하는 스턴트맨을 통틀어 산재보험 가입자 수가 '0'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정부는 예술인 복지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4대 보험 적용을 고민했지만 예산과 현실성 부족 등의 이유로 산재보험만 남겨놓았다.
고용부 측은 한시적 활동이 많은 데다 한 사람이 2개 이상의 작품을 동시에 맡는 경우도 있어 사업주를 특정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가입자가 임의 가입 방식으로 월 1만1,000~4만9,000원의 보험료를 전액 납부하도록 했다.
스턴트맨을 양성해 촬영 현장에 보급하는 서울액션스쿨의 송원종 총무는 "갖가지 위험 요인이 산적한 곳에서 작업하지만 월 100만원도 못 버는 스턴트맨이 부지기수"라며 "생계도 빠듯한데 매달 꼬박꼬박 몇 만원의 보험료를 내라 한다면 누가 가입하겠냐"고 혀를 찼다.
역시 한시적 노무를 제공하는 건설 일용직 근로자는 공사 현장 바깥에서 '업무상 재해'를 입을 일이 없지만 스턴트맨의 경우 당장 촬영 스케줄이 없더라도 연습과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스턴트맨이 촬영과 무관하게 연습 과정에서 부상을 입는다면 꼬박꼬박 월 보험료를 내고 있는 상황이라도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다.
복잡한 가입 절차도 '가입률 제로'에 한몫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 곧바로 의무적으로 보험 신청을 해야 하는 일반 근로자와 달리 스턴트맨을 포함한 예술인은 문화관광부가 설치한 예술인복지재단에서 활동 실적과 수입, 저작권 등록 실적 등을 토대로 예술인임을 입증해야 한다.
이래저래 근본적인 대책 손질이 불가피한 시점이지만 고용부는 "일부 연기자 단체에서 가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말만 전할 뿐 대책 마련에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은 "복지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는 순간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담만 안게 되는 것"이라며 "제도가 현실을 못 따라가는 명목상의 법률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허가하는 관리 기구를 설치해 가입자는 물론 제작사와 사업주로부터도 일괄적으로 보험료를 징수함으로써 사실상 의무가입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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