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0억년 전 단순한 생명체 하나가 세균을 삼키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소화를 시키지 못했다. 생명체 속으로 들어간 세균은 내부에 살아 남아 번식하기 시작했다. 은밀한 둘의 제휴는 진핵세포(막으로 싸인 핵을 가진 세포)를 탄생시키는 우연한 만남이었다. 진핵세포는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기본세포로 식물ㆍ동물ㆍ균류 등 진핵생물로 가지를 치면서 생물의 종(種)이 퍼지게 됐다. 그 세균은 바로 미토콘드리아다. 지금까지 진핵세포의 주요 연구 대상은 핵이었지만 최근에는 중심이 미토콘드리아로 옮겨가고 있다. 진화론적 측면에서 미토콘드리아가 없었다면 지구상에는 진핵생물이 생겨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들어봤음직한 미토콘드리아. 20억년 전 생명체의 탄생을 이끌었던 미토콘드리아는 인체가 쓰는 에너지를 유기화합물(ATP)로 생산해내는 작은 세포기관이다. 한 세포마다 300~400개씩 들어있으며 몸 전체에는 대략 1경개가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딱딱하기 쉬운 생물교과서 속에 머물러있지 않는다. 법의학에서 용의자나 변사자의 신원 확인 등 유전자 감식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특히 신체 세포에 흔하게 있어 추출하는 데도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에는 노화와 죽음과의 상관관계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정상 세포의 호흡 과정에서 미토콘드리아로부터 흘러나온 ‘자유 라디칼(free radital)’ 분자가 노화와 질병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런던 유니버시티카리지 명예 선임연구원인 닉 레인은 박테리아에서 인간으로의 진화에 숨은 지배자인 미토콘드리아의 진실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냈다. 우리 몸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성(性)을 구분하며 인류의 노화와 죽음의 조종이라는 엄청난 일을 해 내는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생명의 기원을 추적한다. 생물학 전문 용어가 등장해 중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되새겨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책은 생명의 기원을 거슬러올라가는 과정을 마치 수수께끼를 풀어내듯 한편의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해 나간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