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5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발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각자 자기편 동맹시(同盟市)들을 거느리고 싸운 제국끼리의 패권 다툼이었다. 당시 아테네는 '직접 민주정치'를, 스파르타는 '과두정치'를 대표하는 폴리스였다. 장장 27년에 걸친 전쟁에서 패자는 아테네였다. 전쟁을 둘러싼 의사결정 과정에서 드러난 민주정체 고유의 취약점 때문이었다.
직접 민주정체에서 권력을 쥔 아테네 민중은 전문가 영역인 군사작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었다. 전쟁 막바지에 아테네 함대 사령관들은 승리에 고무돼 있었지만 한 전역에서 전사자 처리에 실패하자 아테네 민중은 갑자기 분노하기 시작했다.
성난 파도에 겁먹은 선원들이 인양 작업을 거부한 데 직접적 원인이 있음에도 모든 책임을 장군들에게 물었다. 아테네 민중은 마침내 장군들을 재판에 회부, 귀환 중에 적진으로 망명한 2명을 뺀 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벌어진 헬레스폰투스 해전에서 무능한 아테네군 지휘자들은 졸전 끝에 전멸하고 말았다. 패배한 아테네에는 더 이상 자신들의 운명을 편들어줄 동맹시가 남아 있지 않았다. 국고는 비었고 함대를 건조할 능력도 사라졌다. 아테네 제국과 문명은 그렇게 무릎을 꿇었다. 플라톤이 민주주의 정체에 절망한 나머지 철인(哲人)정치를 꿈꾸게 된 계기다.
아테네 몰락의 근원에는 포퓰리즘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포퓰리스트들은 민중이야말로 현명하기 그지없어 국정의 향방에 대해 충분한 지혜를 펼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도자는 이들의 목소리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불행히도 현대 민주주의 정치의 최대 고민은 바로 이런 포퓰리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이다.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아니, 포퓰리즘 신드롬은 갈수록 심도를 더해가고 있다. 정치인들은 너나없이 대중과 여론에의 기회주의적 추종을 정치 능력 과시나 생명 연장의 묘약쯤으로 인식한다.
우리 사회의 여론은 지금 진상 규명이라는 이름으로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고 있다. 현장 전문가들에 따르면 2,000억원∼3,000억원의 막대한 비용은 물론 물리적 위험이 뒤따르는 작업이라고 한다. 설령 녹슬어버린 고철 선박을 건져낸다 하더라도 이미 밝혀진 내용 외에 또 다른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런데도 '진상 규명'은 이미 종교가 돼버렸다.
그동안 찬반이 엇갈렸던 인양 문제를 놓고 우물쭈물하던 정부가 참사 1주년을 맞아 여론 조사에 인양 여부를 떠넘긴 것부터 정도가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중 여론을 힐끗거리는 동안 기술검토를 위한 전문가 회의는 졸지에 존재 이유를 잃어버렸다.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급식비 사건 또한 포퓰리즘과 대중 선동이라는 측면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부 시민단체의 선동과 언론의 의도적 편집 탓에 정작 사실과 진실 앞에 고뇌하던 스승들은 설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설령 남보다 더 혜택 받는 부류라 하더라도 도덕적 해이의 당사자나 그 부모가 '약자(弱者) 코스프레'에만 성공할 수 있으면 그 순간부터 정의(正義)의 편에 설 수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한국사회에 민주주의 이념과 정체가 뿌리내린 지 얼마나 됐다고 이토록 포퓰리즘과 이를 이용한 선동 문화가 사회의 흐름을 장악하게 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중 추수(追隨)나 포퓰리즘의 범람이 위험하다고 해서 엘리트 내지 전문가 집단만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과 엘리트 간에 견제와 균형이 무너질 경우 그 사회의 미래는 맹목적 독단이 지배할 수밖에 없음을 우려할 뿐이다.
이신우 논설실장 shinw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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