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대책없이 급등한 부동산 가격, 신자유주의 바람 타고 급증한 비정규직, 사교육의 기형적 팽창과 공교육의 황폐화...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불평등을 부추기는 대표적 요인들이다. 이들 요소들은 젊은이들의 희망을 앗아가며 '88만원 세대' '3포 세대'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돈이 없어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이라는 사는 낙을 포기한다 하여 3포 세대다. 사랑하고 결혼해서 아이 낳아 키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온 그들의 부모세대에게는 기가 막힌 현실이다. 그러니 2000년 이후 우리나라 평균 출산율이 OECD 주요 국가 중 최저 수준인 1.2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정부는 양육 환경을 개선해 나갈테니 아이를 낳으라고 독려한다. 하지만 낮은 출산율만 거듭 강조할 뿐 높은 양육비에 대해서는 좀체 입을 열지 않는다. 그동안 국가와 정부 혹은 기득권 세력이 알려주지 않았던 '비밀의 숫자'들을 이 책이 오목조목 짚었다. 저자는 경제,노동,주거 등 사회 전반을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으로, 최근 2년간 모으고 분석한 통계 수치들로 책을 출간했다.
아이 낳기가 무서운 이유부터 살펴보자. 자녀를 낳고 키워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드는 평균 양육비는 3억1,000만원이다. 2003년 약 2억원이던 것이 10년 만에 1억원 넘게 급증했다. 이유를 찾던 저자들은 눈에 띄는 변화로 "10년 새 70% 증가한 영유아기의 자녀 양육비"를 지목했다. 사교육비 지출의 출발선이 유아, 심지어 영아로 내려와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키운다는 얘기다. 만 0세에서 3세 미만 영아의 41.9%, 만 3세에서 5세 사이 유아의 86.8%가 사교육비를 쓰고 있었다. 영아의 총 사교육비는 1조 8,380억원이고, 유아는 2조 1,743억원으로 집계됐다. 대체 그 어린 아이들이 '돈 들여'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시민사회단체 사교육없는세상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영유아 대상 사교육 프로그램에서 영어(30%)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수학·과학(20%), 탐구력 통합(19%), 국어(18%) 순이었다. 교과목 중심의 선행학습 열풍이 영유아기까지 번져간 것을 알 수 있다. 책은 "2013년부터 본격화된 무상보육이 공보육 강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사교육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월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액은 6만 8,000원인 반면, 월 소득 700만원 이상 고소득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액은 72만 6,000원이다. 소득만큼 사교육비가 커져 결국 부모의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학업 경쟁에서 유리해 지는 상황이 됐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상황이 쳇바퀴 돌듯 지속되는 게 우리 교육 현실이다. 이처럼 교육열은 세계 최고지만 정작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꼴찌다. 유니세프가 조사한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에 따르면 OECD 전체평균을 100으로 봤을 때 한국 아이들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72점으로 최하위권이었다. 청소년 사망자 중 31.9%, 즉 10명 중 3명이 자살로 세상을 등진 것도 이를 뒷받침 한다.
살아남아(!) 대학을 들어가더라도 높은 대학등록금에 또 허리가 휜다. 도시 노동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445만원 정도인데 국공립대 등록금은 410만원, 사립대는 736만원 수준이다. 대학 등록금이 월 소득과 맞먹거나 곱절이다. 이들 20대 청년들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끼고 또 아낀다. 최저 수준의 주거기준에 미달하거나 고시원,쪽방,비닐하우스,옥탑,지하 등에 사는 경우를 주거빈곤율이라고 하는데 전체 주거빈곤율은 13.1%인데, 1인 청년 주거빈곤율은 23.6%나 된다. 쪽방에서 자더라도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싶지만, 20대의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이라는 말대로 20대 청년 고용율은 55.8%에 불과하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여도 대기업이 아닌 한 계속 힘들다. 전체 임금 노동자 중 '300인 이상 대기업' 종사자의 비중은 11.9%에 불과하다. 소수에 불과한 300인 이상 대기업 종사자의 월평균 임금은 357만원으로, 5인 미만 사업장의 월 평균 임금인 130만원의 2.7배다. 2013년의 최저임금이 4,860원인데, 최저임금도 못 받은 임금노동자는 208만명 이상이었다. 이런 식으로 소득격차로 인한 부의 쏠림은 눈덩이처럼 커져 간다.
대개의 임금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해도 여전히 가난한 워킹푸어(working poor) 신세다. 연간 노동시간을 평균해 봤더니 OECD 평균이 1,765시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2,090시간. 즉 한국의 노동자는 1년에 2달(주40시간 기준)이나 더 일한다. 그런데도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소득 하위 20%의 저소득층은 '가계부채'가 연소득의 2배에 이른다. 통계청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2010년 저소득층의 소득대비 부채비율은 143%였는데, 2011년에는 201%로 올랐다. 돈을 벌어 빚을 갚는 게 아니라 '부채 폭탄'만 커졌다. 버는 돈이 적다 보니 대학등록금이나 전세자금, 갑작스런 의료비 등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비싼 이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다 보니 이렇게 됐다. 저소득층일수록 제1금융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 전체 가계대출 중 제2금융권 대출이 절반이나 차지한다. 신용대출 평균 이자율이 38.1%인 대부업체는 이자만 2조 8.000억원을 긁어모았으니 가난한 사람은 대출 원금을 갚지도 못하고 부채만 끝없이 커진다.
이쯤 되면 책이 알려주는 '비밀의 숫자'는 '진실의 숫자'를 넘어 '분노의 숫자'로 다가온다. '세살 가난이 여든까지' 가고, 복지가 아닌 불평등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따라다니는 형국이다. 그간 통계치는 권력의 눈속임으로 종종 이용된 경향이 있었으나, 이 책에서는 반대로 그 감추려던 속셈을 완전히 까발리고 있다. 저자들이 독자를 분노하게 만들면서까지 꼼꼼하게 수치들을 분석한 이유는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저자들은 "불평등을 나타내는 각종 통계들을 인포그래픽(Infographic·시각화 한 정보자료)으로 보여줘 한국 사회의 실태를 직관적이면서도 쉽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려 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책 곳곳에는 원그래프,막대그래프 등 각종 인포그래픽이 등장해 어디에 얼마만큼의 돈이 쏠려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불평등이 깊어진 때를 저자들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한 1990년대 중·후반으로 보고 있다. "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져온 금융 개방은 대기업의 팽창 욕구와 결합해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킨"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외환위기는 우리 경제가 신자유주의로 방향을 전환해,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분기점이 됐다. 그리고 이 불평등이 해소되지 못한 채 더 딱딱하게 굳게 된 것은 '국가'의 탓이 크다고 분석했다. 빈곤과 실업을 개인의 문제로 볼 게 아니라는 저자들은 "이 책이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사회안전망의 부재'라는 하나의 원인으로 귀결된다"면서 "우리는 갑자기 일을 하지 못하게 되거나 질병에 걸리는 등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로부터 기본적인 생활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거꾸로 생각하면 사회안전망의 확대야 말로 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유일무이한 방안"이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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