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두고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이견이나 마찰이 커지고 있다.
월가에서 일하는 필자가 테이퍼링과 관련해 주로 받는 질문은 '연준이 세계경제 불안 요소를 고려해 신흥국 등과 보조를 맞출 것인가' 아니면 '미국경제만 고려해 진행할 것인가'다. 특히 '연준 출구전략에 따른 최근 신흥국 불안이 동아시아·남미·러시아 등이 동시 위기를 겪었던 1997년과 같은 사태로 발전할 것인가' '신흥국 위기가 한국까지 전이될까' 등의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풀었던 유동성을 줄이는 테이퍼링은 경제가 정상상태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정책이다. 문제는 시기와 속도다.
연준이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에서 외교·수사적 발언은 할 수 있어도 신흥국 시장을 고려해 테이퍼링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은 것이 좋다. 연준의 정책목표는 미국 내 고용과 인플레이션에 맞춰 있고 타국에 미치는 영향은 각국이 알아서 대처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이 미국 통화정책 입안자들의 컨센서스다.
월가 투자가들이나 경제학자들은 세계경제가 나빠질 경우 미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운운하며 테이퍼링이 지연되길 원하지만 이 역시 미국 내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연준의 테이퍼링 속도와 시기는 전적으로 미 경제 변수에 의해 좌우될 것이고 신흥국의 위기 여부는 통화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신흥국들이 유동성 가뭄으로 위기에 처할 것은 자명하다. 최근 경험한 신흥국 채권시장의 출렁임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2008년 이후 신흥국들의 유동성 공급(자금조달)구조가 바뀌었다. 은행을 통한 자금조달은 약 23% 줄어든 반면 채권을 통한 유동성 공급은 약 2.5배 규모로 증가했다. 이처럼 신흥국 유동성 공급구조가 과도하게 발행된 채권시장에 쏠려 있는 가운데 테이퍼링이 진행되면 신흥국 채권시장에서 글로벌 자금의 이탈이 계속될 것이다.
1997년과 같은 전방위적인 금융위기까지는 아니어도 앞으로 1~2년 이상 불규칙(on and off)하지만 지속적으로 위기가 조성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흥국 위험부담 심리가 가중될 것이다. 다만 신흥국 위기는 각국 상황에 조금씩 다르게 전개될 것이다. 대처해법도 이자율·환율·재정정책 등 기본 거시정책과 통화스와프, 외환 자본규제 등 단기대책을 조합해야 하는 점은 공통점이지만 신흥국들은 각각 개별 경제상황에 따라 최적의 맞춤 해법으로 대처해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으로의 위기전염 여부다. 필자의 견해로는 단기 여파는 있을 수 있어도 상대적으로 다른 신흥국에 비해 충격은 적을 것으로 본다. 한국은 다른 신흥국들과 달리 경상수지 흑자, 외환보유액, 국가부채 비율 등의 측면에서 글로벌 자금 흐름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기본요건들을 갖추고 있다. 또 통화스와프 확대, 외환·자본 규제 등 단기대책도 웬만큼 마련돼 있어 신흥국 금융불안이 한국 금융시장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신흥국 위기 장기화로 세계경제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국내 실물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금융시장 불안 우려나 단기대책보다 더 시급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국내 경제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경제성장 궤도를 하루빨리 안착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금융과 신용이 실물경제에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꿰뚫어보는 안목을 가지고 경제 구조의 질적 개선과 함께 실물경제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변동성 많은 세계 금융, 경제풍랑을 헤쳐나갈 수 있게 경제 근간인 내수 회생을 효과적으로 안착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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