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퍼드멀린, 심슨대처앤바트렛, 맥더모트윌앤에머리, 폴해이스팅스, DLA파이퍼.
국내에 진출한 세계적인 로펌들 이름이다. 그런데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같은 빌딩에 사무실을 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서울 중구 수하동의 미래에셋 센터원빌딩이다.
국내 대형 로펌들이 강남과 강북에 고루 퍼져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유수의 해외 로펌들이 한 건물에 몰려 있는 상황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사무실을 방문한 고객들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출입구부터 안내 인력을 배치하거나 같은 층 안에서도 구역별 보안시스템을 작동하는 등 보안유지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국내 대형로펌들은 경쟁사 인근에는 입주하지 않는 것이 오랜 관행이다. 물론 서초동 법조타운 인근에 송무를 중심으로 하는 로펌들이 몰려 있기는 하지만 규모가 영세하고 법원 검찰만 왕래한다는 점에서 외국계 로펌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외국계 로펌들은 왜 한곳에 둥지를 튼 것일까. 법조계에서는 아직까지 송무를 다룰 수 없는 외국계 로펌들이 기업고객과의 소통에 주안점을 두고 '입지조건'을 판단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해외투자와 인수합병(M&A) 관련 자문 등 외국계 로펌의 주요 업무를 위해 대기업이나 금융권 본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센터원빌딩 바로 옆에 세워진 페럼타워에 스콰이어샌더스, 클리포드챈스, 클리어리고틀립 등이 한데 모여 있는 상황은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센터원빌딩 웨스트센터 23층에 한국사무소를 개설한 쉐퍼드멀린의 김병수 대표변호사는 "기업 본사와 손쉽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강북 지역에 이만한 곳이 없다"며 "입주를 결정할 즈음 여러 곳을 살폈지만 공간 활용도나 교통 측면에서 센터원빌딩이 단연 으뜸"이라고 말했다.
연이어 외국계 로펌을 맞이한 센터원빌딩 측에서도 비슷한 설명을 내놓고 있다. 빌딩 관계자는 "서울 도심 내에 있는 신축빌딩이고 교통이 편리한데다 금융권과 기업들의 선호도가 높은 지역이라는 점이 입주사들에 매력적으로 보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컨설팅회사 맥킨지에서 초기부터 입주를 결정해둔 상태였다는 것이 다른 입주사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임대율이 80%에 가까운 상황에서 입주를 촉진한다는 이유로 기준가보다 저렴한 금액을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국내 로펌에 근무하는 A씨는 "외국계 로펌이 사무실을 결정할 때 본사 담당자가 직접 한국으로 건너와 주요 후보지를 3~4번에 걸쳐 꼼꼼히 살펴본 것으로 안다"며 이들이 사무실을 열 때 신중을 기해 여러 조건을 종합적으로 따졌다고 전했다.
반면 강남을 선택한 소수의 외국계 로펌도 있다. 법무법인 세종 출신의 박진원 변호사가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오멜버니앤마이어스는 역삼동 메리츠타워에, 롭스앤그레이는 대치동 포스코서울 사옥 안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해 7월 법률시장 개방 이후 지금까지 외국계 로펌 18곳이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로 법무부에 설립인가를 신청했으며 이 가운데 13곳이 설립인가를 받아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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