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작별을 고하고 나서야 주목을 받는 기구한 인생이다. 지난 9일 배우 우봉식(43)씨가 서울 개포동 자신의 월세 집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지독한 생활고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생계비관 자살은 대중문화계도 비켜가지 않았다. 우씨는 30여년간 단역배우로 연기활동을 이어왔지만 그마저도 일이 없어 일용직 노동자로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발버둥 쳤지만 찾아온 것은 우울증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 결국 우씨는 스스로 스탠바이(대기) 단역배우 인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5,000만∼1억원을 호가하는 스타급 연기자의 드라마 한 회 출연료 소식을 접하고 있으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빈곤의 그늘이 없는 딴 세상인 듯하다. 그러나 스타가 되기보다 당장 먹고살 일을 걱정해야 하는 생계형 배우들이 상당수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조합원들의 수입을 기록한 자료에 따르면 중간 소득 구간이 없는 극과 극의 분포를 보였다. 소수가 고액의 출연료와 광고 수입으로 부를 쌓았지만 70% 이상의 배우들은 연 소득이 1,000만원도 안돼 생계 걱정,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왔다.
이달 11일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순위 상위는 숨진 우씨의 이름과 최근 생활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무명 배우들의 이름이 장악했다. 매해 세상을 스스로 등지는 '스탠바이 인생'들이 줄을 잇지만 순간의 화제 몰이와 재조명으로 그칠 뿐 업계 전반에 내재한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제작비의 절반 이상을 스타급 연기자들의 캐스팅에 할애하고 단역배우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뒤따르지 않는다. 그간 일부 배우들이 출연료를 자진 삭감하는 등 개인별로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인 때는 제법 있었다. 그러나 손에 꼽을 정도의 사례로 '양극화'의 간극을 쉽사리 매울 수는 없었다. 합리적인 출연료 책정기준 마련과 현실화를 위해 업계가 진심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아울러 명성에 기대기보다 '단역배우'의 '단역'을 떼어내고 '배우 아무개'의 연기 내공과 가능성을 믿고 이들에게 고른 캐스팅 기회를 제공하도록 제작자의 선구안도 좀 더 빛을 발해야 할 것이다. '양극화'의 도돌이표를 지우고 마침표를 찍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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