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도 이상서만 처리가능한 비효율적 기존 촉매 대신
220도서 작용하는 촉매 개발… 세계 최초 상용화 성공
제철소·발전소·소각로 등 산업현장서 두루 활용될 듯
제철소·선박·자동차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곳은 엔진의 효율성이 좋아질수록 낮은 온도의 오염물질을 배출한다. 엔진에 연료를 투입할 때 온도와 엔진을 거쳐 가스가 된 뒤의 온도 간 차이가 클수록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각 분야에서 엔진 효율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지만 오염물질을 저온에서 정화하는 기술은 아직 그만큼 발달하지 못했다. 아직도 대부분의 산업 현장에서는 오염물질을 섭씨 300도 아래에서 처리하기 힘들어 다시 한 번 이를 가열해 온도를 높인 뒤 정화하는 비효율적 방식을 따른다.
2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만난 하헌필(53) KIST 물질구조제어연구센터장은 대표적인 환경 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을 220도에서도 처리할 수 있는 촉매를 개발해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질소산화물은 대부분의 산업 현장에서 나타나는 초미세 먼지를 만드는 주범으로 산성비·스모그 현상 등을 유발한다. 그동안에는 질소산화물을 처리하는 촉매로 몰리브덴이나 텅스텐을 조촉매로 사용하는 V-TiO2계 촉매가 세계 시장을 지배했다. 그러나 이 촉매는 작동 범위가 300도 이상의 고온 영역에만 국한돼 있어 온도가 낮은 질소산화물을 한 번 더 가열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거쳐야 했다.
이에 하 센터장은 지난 2007년께 안티몬(Sb) 원소를 활용해 250도에서도 질소산화물을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촉매를 개발했다. 이 기술은 강릉에 있는 중소기업 대영씨엔이에 이전돼 포스코 광양제철소 소결로에 2013년부터 적용됐다. 이를 통해 포스코는 기존 외산 제품을 국산으로 대체하는 것은 물론 촉매 가격을 30% 이상 줄이면서 수백억원의 비용을 아끼게 됐다.
하 센터장의 기술은 비용뿐 아니라 내구성도 좋아 제철소는 물론 소각로·발전소·굴삭기·트럭 등 오염물질이 발생하는 어느 곳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실제로 대영씨엔이는 중국·대만·태국 등의 제철소·발전소에 이 기술을 활용한 촉매 장치를 수출하기도 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가 기존에 개발한 촉매에 세륨(Ce) 산화물인 세리아를 추가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할 수 있는 220도 저온 처리 촉매까지 2012년 개발했다. 이는 국내 선박 엔진 제조회사에 기술이전돼 상용화를 눈앞에 둔 상태이다. 국제해사기구(IMO)에서 내년부터 선박이 유해가스 배출규제지역(ECA)을 운항할 때 이를 규제하는 제도를 시행하기로 함에 따라 전 세계 선박업계에서는 해당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현재 지상 과제이다. 하 센터장의 촉매기술은 현재 질소산화물을 처리하는 가장 효율적인 기술이기 때문에 앞으로 수천억~수조원에 이르는 해당 시장을 우리나라가 선도할 수 있다. 하 센터장은 "경쟁 국가인 일본과 유럽은 선박 엔진 앞부분에 장착할 수 있는 촉매장치를 개발하는 데 매진했는데 우리는 반대로 엔진 터보차저(엔진 출력을 높이는 보조장치) 뒤에 설치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며 "선박 분야는 시장이 이제 열리기 시작하므로 파급효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 센터장은 나아가 자동차에도 적용할 수 있는 촉매를 개발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150~200도에서도 질소산화물을 처리할 수 있는 촉매를 개발하면 모든 자동차에 적용할 수 있고 국가 성장동력에도 직결될 수 있다. 아직 연구에 돌입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기술을 확장하면 이것도 꿈이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 센터장은 "질소산화물을 저온에서 처리할 수 있는 기술만 뒷받침되면 자동차회사도 마음대로 엔진효율을 높일 수 있다"며 "자동차까지 기술을 확장할 수 있다면 경제 효과가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과학자로 충분히 만족… 인재 '의대 쏠림' 아쉬워" 윤경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