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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29.식물원에 거는 기대와 꿈
입력2003-06-03 00:00:00
수정
2003.06.03 00:00:00
정민정 기자
나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예림 경기식물원` 조성공사가 한창인 경기도 여주 산북에서 보내고 있다. 아동도서 출판 30년에 사회와 어린이를 위해 남겨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결심한 일이 바로 식물원을 조성하는 일이었다.
내가 구상하는 식물원은 오랜 세월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야생화 등 우리의 자생식물을 한데 모아 생장(生長)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토종식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폭을 넓혀주고 자연의 지혜를 배우도록 하는 일 역시 출판 못지않게 보람 있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위치를 선정하기 전 관계 전문가와 함께 수년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에 장소를 물색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2년 전 경기도 여주군에 부지를 확보하고 지난해 봄부터 조성작업을 벌이고 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있어 희귀 식물들이 많이 자란다. 작은 계곡이며 못ㆍ습지 등 지형 지물까지 이상적이어서 자생식물 확보와 식재 작업을 하는데도 비교적 순조롭다.
나는 아침마다 식물원 옆에 붙여 지은 조그마한 집에서 5시에 눈을 뜨면 운동화를 꿰 신고 밖으로 나선다. 아직 어둠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미명의 시각이지만 그래도 이미 새들은 깨어나 적막한 새벽 공기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음을 느낀다.
요즘 꽃이 한창인 초롱꽃, 하늘나리, 털중나리, 매발톱, 애기기린초 등 이제 제법 조목조목 군락을 이뤄 가고 있는 야생화 정원을 가로질러 올라가면 울창한 숲이 이어지는데 그곳은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반겨 준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산속을 즐겨 헤매고 다녔고 식물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어른들에게 묻는 것이 많았다. 숲속에 가서 여느 사람들과 나무며 풀 이름 알아 맞히기를 한다면 남들보다 결코 지지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도 가슴으로 느낀 어린시절의 경험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성장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흙을 밟으며 자연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크나큰 행운을 주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 본리 인흥마을이다. 화원면은 읍이 되었다가 지금은 대구 광역시에 포함되고 읍내에는 아파트가 즐비해서 도시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어렸을 적만 해도 고향 본리동은 궁벽한 시골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집이 있는 곳은 부채골로 불렸는데 멀리서 보면 흡사 부채를 펼쳐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채골은 우리 아버지 형제가 일가를 이루고 살던 삶의 터전이었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와 부모님, 우리 4남매가 작은 삼촌과 한집에 살고 있었고 옆집에는 큰삼촌 내외분과 사촌들, 그 옆집에는 둘째 삼촌 내외분과 사촌 3명이 있었다.
나란한 세 채의 집 뒤로 감나무 밭이 널따랗고 주로 밭농사, 특히 보리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집 앞에는 조금의 천수답이 있긴 했지만 수확이 많지 않아 거의 꽁보리밥을 먹었고 명절이나 제사 때가 돼야 쌀밥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어린시절은 생각하기에 따라 가슴 아픈 과거사에 불과하다. 하지만 꽁보리밥과 당시의 자연환경은 나의 인생여정에서 엄청난 자신감을 주는 배경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식물원 계획을 처음 입 밖으로 꺼냈을 때 가족들이나 나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람은 있겠지만 이익 없는 일을 왜 또 하느냐”고 만류한 것을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던 것도 자연의 가치에 대한 소중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들에게 토종식물과 자연환경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마련해주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보람 있는 일이다.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는 상실감을 맛볼 때도 있지만 그게 다 팔자라는 생각을 하면 이내 마음이 풀린다.
<정민정기자 jmin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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