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돈을 갚게 만드는 게 유리한 유럽중앙은행(ECB)과 국제통화기금(IMF), 그리고 버틸수록 유리한 그리스가 패를 다 보여준 상태에서 마지막 카드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자금들은 이 게임을 지켜보면서 투자 타이밍을 잡을 것입니다."
황웅성(미국명 피터 황)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 WM 부문 대표(managing director-wealth management)는 6월3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에 대해 이같이 정리했다. 황 대표는 삼성증권 뉴욕법인장을 하던 지난 2002년 메릴린치로 이직한 후 13년 동안 메릴린치 WM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황 대표는 "그리스 자체의 이슈보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PIGS 위험이 그리스 디폴트로 인해 다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르투갈(Portugal), 이탈리아(Italy), 그리스(Greece), 스페인(Spain)를 의미하는 PIGS의 위기가 현실이 될 것이냐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불과 2년 전에 남유럽 국가들이 모두 위기에 처했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최근에는 아무도 이들 국가의 재정위기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며 "실업률, 국내총생산(GDP) 모두 과거와 똑같은 수치를 보이는 이들 국가의 국채 수익률이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보다 훨씬 낮아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경제가 회복돼가는 미국의 국채 수익률이 2.4%대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펀더멘털이 거의 개선되지 않은 스페인·포르투칼·이탈리아의 국채 수익률은 1%대 중반을 보이는 상황은 그리스 사태의 해답을 보여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황 대표는 "양적완화를 추진했던 ECB가 남유럽 국채를 떠안으면서 경제회복이 된 미국보다도 국채 수익률이 낮아진 것"이라며 "이후 남유럽 재정위기가 수면 아래로 내려앉았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그리스 디폴트 사태가 남유럽으로 전이될 조짐이 보이면 결국 ECB와 IMF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그리스 부채의 성격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스의 부채를 살펴보면 20%는 국채로 이뤄졌고 그중 80%는 그리스 은행을 포함한 그리스 국내 기관들이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며 "부채금액이 많다고는 하지만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감내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그리스가 IMF에 디폴트 하더라도 민간 채권자들 상대로 연쇄 디폴트가 발생하는 공식적·전면적 디폴트 사태로는 번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황 대표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ECB나 IMF가 그리스를 디폴트 상태로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ECB나 IMF는 디폴트 이후 그리스를 포함한 남유럽 전체에 좌파 정권이 전면 부상할 경우 불확실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부담감이 있다"며 "특히 그리스가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러시아에 구조요청을 할 경우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우에 따라 러시아 군대가 그리스에 주둔해 유럽의 군사적 긴장감까지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채권자는 어떤 식으로든 돈을 받겠다는 숙명을 지고 있다"며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을 탈퇴하는 식의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기보다 구제금융을 연장해서 경제와 연금 구조 등을 개혁시키고 돈을 갚게 만드는 게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그리스 사태와 관련한 글로벌 자금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자신은 지난달 26일 고객 계좌에서 주식을 모두 팔았다고 말했다. 메릴린치에서 수익률 1~2위를 기록하며 WM 부문 대표를 맡은 그가 직접 운용하는 고객 자산은 5억달러 이상이다. 지난달 27일로 예고된 ECB의 집행위원회에서 그리스 긴급유동성 지원이 불발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황 대표는 "지금은 현금을 보유하고 시장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매수 시기를 조절하는 국면으로 갈 것"이라며 "미국이나 유럽 시장과 달리 중국 시장을 주목하는 자금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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