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투자자금이 원자재 시장에서 철수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가 금융위기의 터널에서 벗어나면서 원자재 시장도 최근 수년간 회복될 기미를 보였지만 올 들어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 대두로 달러 강세가 이어지고 원자재의 블랙홀이던 중국 경제의 성장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주요 원자재 가격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가격회복에 대한 기대를 접고 보유한 상품을 처분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 대신 미국 달러화와 활황세의 미국 증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상품시장지수가 전날보다 0.8% 떨어지며 지난 2009년 7월 이래 가장 낮은 수치인 118.2027을 기록하자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지난 3개월 동안의 하락폭은 12%로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크다. 존 베르그다일 씨티그룹 분석가는 "원자재 시장의 하락세에 정신적으로 '무조건적 항복' 상태의 투자자들이 많다"며 "시장에 대한 기초체력이 더 나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원자재 가격 하락세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과 중국의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전체 수요가 감소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올 들어 우크라이나 사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사태 등 지정학적 마찰이 끊이지 않는데도 하락세가 계속되는 점은 이례적이다. 지정학적 위기가 발발하면 원자재 수급 전망이 불투명해져 가격이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투자자들이 원자재 시장에서 아예 발을 빼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원자재 시세는 1999년 슈퍼사이클이 시작한 이래 상승세를 보였으나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급격히 꺾였으며 그후 대세 상승기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상태다.
원자재 가격 하락은 주요 자원 수출국의 자금유출로 이어지고 있다. 철광석·석탄 등을 수출하는 호주 달러화는 22일 0.2% 하락했으며 브라질 헤알화도 1.2%나 떨어졌다.
이처럼 원자재 시장이나 원자재 수출국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미국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키코메탈의 피터 허그 이사는 "투자자들이 귀금속을 현금으로 바꿔 달러와 미국 주식에 넣고 있다"고 전했다. 달러와 주요 10개 통화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블룸버그달러인덱스는 주 단위 기준으로 22일까지 10주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2010년 7월 이래 최고 수준으로 로이터통신은 "지수가 만들어진 1971년 이래 최장기간의 상승세"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경기회복세에 따라 기준금리 조기 인상 가능성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도 글로벌 투자자금의 미국 환류를 부추기고 있다.
특히 달러 강세는 역으로 원자재 가격 하락세에도 영향을 미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원자재 시세의 대부분이 달러화로 표시되기 때문에 달러 강세는 원자재 자산을 상대적으로 비싸보이게 만들어 원자재 시세가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뉴욕증시는 거품이 끼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다우지수가 사흘 연속 사상 최고치를 수립하는 등 여전히 뜨겁다. 비록 22일에는 중국 경기둔화 우려에 일제히 하락하며 숨을 골랐지만 딱 1년 전과 비교하면 다우지수는 11.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7.18%나 올랐다.
특히 일각에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양적완화로 풍족해진 유동성을 타고 상승한 뉴욕증시에 달러 강세가 다시금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 경제전문방송 CNBC는 "달러화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미국 증시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끌어올릴 것으로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고 전했다. 비트 지겐탈러 UBS 수석 외환전략가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와중에 유럽 자산시장에서 이탈한 자금이 뉴욕증시로 유입됐다"고 밝혔다. 여기에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가 그린슈(초과배정옵션)까지 행사하면서 무려 250억달러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실시한 것도 뉴욕증시로의 자금유입을 부채질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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