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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추석용 가족영화
입력2007-09-21 17:18:53
수정
2007.09.21 17:18:53
언제부터인지 추석 극장가에 개봉 공식이 생겼다. 하나는 블록버스터 영화, 다른 하나는 가족영화. 이런 현상에는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은 연휴가 꽤 길다는 점이다. 차례와 가족모임을 끝내고 난 후 극장은 적당한 여가장소로 선택된다. 일상의 지루함을 벗어난다는 효과도 주고 한편으로는 멀리 공들여 이동해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극장가들은 멀티플렉스인데다가 복합상점인 경우가 흔하다. 일상을 벗어나면서도 일상적인 휴식공간, 극장은 편하면서도 그럴듯한 여가공간으로 선택된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연휴 기간에는 혼자만의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과 연관된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났다 되돌아오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이 기간만큼은 가족과 함께 있을 것이 요구된다.
요구는 명절 공식 일정이 끝난 다음에도 지속된다. 대가족에서 소가족으로 줄었을 뿐 학교를 쉬는 아이들부터 회사업무에서 놓여난 부모까지 공통의 시간 앞에 놓이게 된다.
가족 여가라는 조금은 어려운 제안을 흡수한 것이 바로 극장이다. 극장은 많은 가족들이 의외로 할 일이 없어 곤혹스러워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가족 단위 영화 관객들은 ‘그’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간다기보다 가족끼리 갈 곳을 고민하다 적합한 영화를 고른다. 감독에 대한 개인적 취향은 들어설 여지가 별로 없다. 말 그대로 가족의 요구를 적정한 수준에서 맞춰줄 보편적인 작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명절 기간 상영되는 영화들에 나타난 가족의 양상이다. 고작 몇 년 전만 해도 가족 단위 영화들은 ‘가문의 영광’이나 ‘투사부일체’ 등의 조폭 코미디 일색이었다.
조폭 코미디는 단순한 사고방식, 거친 언어로 꾸며진 일종의 상황극으로 진행된다. 꽉 짜인 일상의 피로가 엉뚱하고 무식한 상황들 속에서 무장해제되곤 한다. 변화의 조짐은 올해 초 설 명절 연휴부터 시작됐다. 가족 영화가 효도 영화라는 다른 장르로 조금씩 이동해가고 있는 것이다.
설날에 개봉했던 ‘이대근, 이댁은’은 자식에게 버림받은 한 노인의 굿판을 그리고 있다. 화해의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죄 많은 아버지는 자식과 화해하고 용서를 얻는다. 올 가을에 개봉한 김상진 감독의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도 비슷하다.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에는 어머니에게서 유산 분배를 받자 어머니라는 존재를 잊어버린 자식들이 등장한다.
돈을 얻자 자식들은 어머니를 아예 잊고 지낸다. 어머니가 납치됐다고 할지언정 걱정되는 것은 협상금의 정도뿐이다. 하명중 감독이 오랜 만에 연출한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도 마찬가지다. 제목이 암시하는 바처럼 이 작품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호소한다.
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제는 젊은 세대가 위 세대를 누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의 대답은 부모에게서 경제력만을 취사선택하는 젊은 세대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로 받아들여진다.
이 대답은 외로운 노인들에게 위안의 판타지를 제공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용서와 화해의 과정이 386이라고 호명될 만한 중견 감독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로부터 억압받고 자랐다고 여겼던 386세대들이 빠른 속도로 아래 세대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이는 전복적 세대였던 스스로가 어느새 사회적 어른이 된 것에 대한 당혹감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학생들에게 사회적 소수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놀랍게도 몇몇 학생들은 노인이라고 대답했다. 동방예의지국이니 장유유서니 하는 말들을 배우며 컸지만 어느새 노인들, 기성 세대들은 발언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이는 어른들이 권위를 잃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권위를 잃어버린 노인들, 명절용 가족 영화들은 그 권위가 과연 재산으로만 가늠될 수 있느냐 묻고 있다. 영화가 사회상의 반영이라면, 꼭 깊이 생각해봐야 할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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