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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남북정상회담을 돌아보며
입력2007-10-04 17:04:18
수정
2007.10.04 17:04:18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의 제2차 남북한 정상회담은 생각하는 시민들의 마음에 야릇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성사 과정이 석연치 않았고 의제도 일정도 미리 정해지지 않았다. 심지어 노 대통령이 북한에 닿은 뒤에 김 위원장은 느닷없이 일정을 하루 늘리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 그것도 다음 대통령을 뽑는 선거 운동이 한창인 시기에 북한을 방문한 것도 점잖은 처사는 못 된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번 회담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야당은 아예 회담이 ‘헌법 테두리 안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듣기 민망한 얘기를 했다. 우방 국가들도 한결 같이 회담을 달가워하거나 대통령을 미더워하지 않았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회담이 나오게 된 까닭은 물론 노 대통령 자신의 됨됨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이 시작했고 현 정권이 이어받은 ‘햇볕 정책’이 배경이 된 것도 분명하다. 본래 그런 유화 정책은 늘 실패하게 마련이지만 ‘햇볕 정책’은 특히 크게 실패했다. 우리는 북한을 많이 도왔지만 돌아온 것은 원조로 개발된 핵무기였으니 유화 정책의 실패 치고도 심각한 실패다.
어쨌든 지난 십 년 동안 추구된 유화 정책과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새겨야 할 교훈들을 또렷이 보여줬다.
먼저, 우리 대통령은 남북한 사이의 관계를 보다 낫게 만드는 일에서 자신이 이룰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념과 체제가 이질적이고 남한을 지배하겠다는 목표를 북한이 버릴 리 없다는 사정은 남북한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 수준에서 옹색하게 만든다. 북한의 핵무기를 없애려는 ‘6자 회담’이 실질적으로 북한과 미국 사이의 일이 됐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지정학적 요인은 우리의 입지를 아주 좁힌다. 다섯 해 임기의 대통령이 이룰 수 있는 것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을 깨달아야 욕심으로 국사를 그르치지 않을 수 있다.
다음, 북한 정권의 정체에 대해서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북한 정권은 사악하다. 현실적으로 그런 정권과 상대할 수밖에 없지만 그들의 정체를 잊거나 외면하는 것은 크게 위험하다.
회담의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도 긴요하다. 만나는 것 자체가 성과라는 얘기나 ‘평화’와 ‘민족 단결’과 같은 추상적 구호들을 앞세우는 것은 북한에 스스로 이용당하겠다는 자세다. 회담에선 국군 포로와 납북자들의 석방,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 그리고 핵무기의 폐기와 같은 실질적 사항들이 다뤄져야 한다. 그런 사항들을 다루는 것이 ‘북한과 싸우라는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면 굳이 정상회담을 할 필요가 있을까.
민주 국가의 선출된 대통령의 시평(time horizon)은 독재자의 그것에 비해서 아주 짧다는 점도 새겨야 한다. 임기가 그리 길지 않은 우리 대통령은 당연히 성과를 빨리 내고 싶어한다. 그런 조급함을 훨씬 긴 시평을 지닌 북한 지도자는 계산 속에 넣을 것이다.
북한 정권에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맡기는 어리석음을 피하는 일도 긴요하다. 선거 때 노 대통령은 선언했다. 북한과의 관계만 잘 유지하면 다른 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고. 북한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한 일로 삼았으므로 그는 북한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임기 내내 북한의 눈치를 보고 정상회담을 애걸해야 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온 후보들은 그렇게 북한에 고삐를 내줄 발언을 삼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이익을 나라의 이익보다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어떤 정치가에게도 지키기 어려운 교훈이지만 그래도 지도자는 정상회담으로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손쉽게 늘리고 싶은 유혹을 견뎌야 한다. 다음 대통령과의 흥정을 머리 속에서 그리고 있을 북한의 임기 없는 지도자를 만나려고 일정도 의제도 제대로 정하지 않는 채 허겁지겁 북한으로 간 대통령의 모습은 우리를 서글프고 두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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